#39. 꽃은 시들고,

by empty

꽃은 시든다. 어디서 꽃을 피우고 만개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내 앞에 놓인 노란색 프리지아 꽃이 있다. 그 주변은 하얀 안개꽃으로 둘러싸여 있다. 몇 년 전 다니던 문화센터에서는 꽃꽂이 수업을 매주 금요일 저녁 시간에 했다. 문화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장 고된 날이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은 성인가요를 수업하는 꽤나 유명해 보이는 강사님이 와서 소위 재력이 부유한, 여유로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점심시간 전 한 시간을 수업을 한다. 그러고 강사님과 재력이 되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백화점 상층에 가서 식사를 대접하거나 한다. 그것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매번 강의가 오픈될 때마다 가장 빨리 매진되는 강의라서 친밀도가 쌓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짜증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이 된다. 왜 이렇게 준비가 늦냐, 왜 이렇게 덥냐, 왜 이렇게 춥고 으슬으슬하냐 등 민원도 가지가지.


금요일은 성인가요 무대, 좌석 세팅을 하고 그것이 끝나면 쉴 새 없이 어린이 체육 수업 세팅을 해줘야 한다. 어린이집을 가면 바닥에 깔려있는 초록색 패드를 7개씩 연결해서 바닥에 6-70장을 깔아야 했다. 그러고 저녁 늦게까지 수업을 진행하고 다른 방에서는 꽃꽂이 수업을 한다. 사실 2-30대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강의는 꽃꽂이 수업이라 어린아이부터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수업을 듣곤 한다.


꽃을 다 만들고 본인이 쓴 자리는 본인이 치우거나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고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고 돈을 내는데 이런 것까지 치워야 돼? 하면서 무시하고 나가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 뭐, 그들의 생각까지 읽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일을 할 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청소를 하러 강의실 문을 열면 양재 꽃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의 꽃 향기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 향을 맡으면서 청소를 하니 힘들지도 않았던 것 같긴 하다. 꽃이 남거나 시든 꽃을 버리고 가곤 하는데 그 꽃들을 주워 한 묶으면 생각보다 그럴싸한 꽃 한 다발이 된다. 그런 것도 일하면서 소소한 즐거움 혹은 행복이었던 것 같다.


플로리스트 강사님과 친해지고 고민 아닌 고민을 털어놨다. 내 성격은 남자답지 못해서 꽃꽂이나 이런 쪽으로 공부를 하거나 직업을 삼고 싶은데 가격은 어떻게 되고 학원을 다니는 것이 나은지 이런 곳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경력을 쌓는 것이 좋은지 하나하나 다 물어봤더랬다. 강사님은 60대를 훌쩍 넘긴 여유가 느껴지는 아우라를 풍기시는 분이었다. 여기서 일을 조금 더 하다가 익숙해지면 우리 학원으로 와서 일을 해라 라는 말을 들었다. 일종의 스카우트였다. 하지만 일하고 있는 곳을 때려치우고 곧장 넘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넘어가서 배운다고 하더라도 그 만만찮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겠냐는 걱정 어린 마음에 감사하다고 하고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한 달에 150만 원 정도의 돈을 내야 한다고 들었으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나는 브런치를 쓰기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선물 받은 꽃을 하나하나 줄기를 사선으로 잘라주고 물을 갈아주고 내 앞에 놓여 따사로운 햇빛을 온몸으로 쬐고 있는 꽃 한 다발을 보고도 옛 기억이 하나 둘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나는 참 브런치 하기를 잘했다 생각이 든다. 혼자 있을 때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브런치였지만 어느샌가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을 쓰는 것이, 주제를 생각하고 제목을 뽑는 것이, 라이킷 했다는 알람을 하나씩 들어가서 확인하는 내 모습이 참 웃기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신기하다. 정말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38.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