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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l 29. 2024

어쩌다 보니 또 일본을 갔다 왔다.

정말 어쩌다 보니 일본을 또 다녀왔다. 사실 일이 없는 시즌이라 최대한 돈을 아끼고 오래 버텨야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만 살고 있었는데 돈을 쓰더라도 돈이 그저 묶여있는 것뿐이지 순환이 되지 않으니 돈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저기 다 돈을 끌어모으면 겨우 천만 원 정도를 모을 수 있지만 그 돈을 쓰지 않는다고 그 돈들이 불어난다거나 두 배 세배 네 배가 된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일단 쓰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돈을 쓰고 돈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있자면 사실 불안해지기도 한다.


돈을 아껴야만 하는 순간에 아끼지는 못 할 망정 흥청망청 써버리고 여행이랍시고 돈을 써버리니 나는 그런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다녀오는 것도 꽤 나쁜 게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러니까 내 몸에는 두 명이 살고 있는 듯했다. 돈을 모으기만 해서는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돈이 없으니 조금이라도 돈을 굴려야 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고 돈을 쓰고 싶지만 돈을 쓰지 말아야 해! 돈을 병적으로 모아야 해!라는 것도 딱히 아니었다. 이도저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 여행 다녀오는 것을 그렇게 크게 고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 경비와 남은 돈을 계산해 보니 그렇게 손해를 보거나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 가는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큰 고민은 없긴 했다. (그래도 몇 십만 원이 나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는 좀 충격이긴 했지만)


오사카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오사카는 사실 한국의 명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인이 많기 때문에 길을 걷다가 한국어가 들리는 게 일상인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사카 대로변에 있는 음식점이나 술집을 가면 한국어 메뉴가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 정도로 한국인들의 관광지가 되어버린 오사카지만 도쿄에서 자릿세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돈을 지출하고 난 이후부터는 도쿄보다는 차라리 익숙한 곳에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싶어서 오사카로 갔다. 물-론 도쿄보다 오사카가 비행기 값이 저렴했고 저가 항공사가 아닌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갔기 때문에 오며 가며 기내식도 먹고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출국, 귀국 모두 창가 자리를 예약해서 앉을 수 있었다. 나는 불안 지수가 너무나도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비행에도 한 순간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비행기가 흔들리거나 비행기의 날개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볼 때마다 식은땀이 나서 이륙하기 전부터 착륙하고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그래서 항상 비행기를 타고 내리면 나만 너무 힘들고 지친다. 그리고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두통까지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일본으로 들어갈 때는 괜찮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정말 너무 무서웠다. 오후 8시 40분 비행기였는데 활주로에서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승객들을 태우고 활주로로 느린 속도로 이동하다가 그대로 바로 이륙을 해버려서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너무나도 무서웠다. 착륙하는 것도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숭숭하면서 속도를 팍 줄이고 속도가 어느 정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활주로에 착륙하는 걸 보고 정말 너무나도 놀랬다. 그리고 너무 무서웠다.

 

오사카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맡기고 바로 맥주 한 잔을 했다. 오사카는 많이 와봤지만 아직까지 적응이 안 된다. 골목골목에 새로운 작은 이자카야가 생겼고 오후 3시에 오픈을 하는 술집들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나 북적였다. 이 맥주를 마신 술집은 처음으로 가본 곳인데 맥주도 상당히 맛있었고 사장님도 굉장히 친절했고 음식도 굉장했다. 역시 한국에서 먹는 생맥주와는 차원이 다른 일본 맥주여서 너무 행복했다. 그 특유의 부드러움 가득한 맥주를 어떻게 만드는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맥주만 놓고 보자면 일본에서 살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케를 추천받아서 한 잔 했다. 일본 여행을 다니면서 사케를 많이 마셔봤지만 이렇게 넓은 잔에 끝까지 찰랑거릴 정도로 따라주는 곳은 처음이었다. 아마 처음 보는 손님이라서 많이 주셨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케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나중에 돈을 벌거나 혹여나 로또가 된다면 사케 bar를 차리고 싶다. 물론 일본 현지에서 받아올 수 있는 루트는 마련해두고 해야겠지. 사케가 너무 좋다. 너무 맛있다.

이번 여행에는 값비싼 카메라를 사가려고 했는데 재정 상태가 여유롭지 않아서 카메라를 사진 못했지만 나름 건질 수 있는 사진들은 건진 것 같아서 후회는 없다. 특히나 이렇게 철도 사진을 이쁘게 잘 찍어와서 마음이 놓인다.


사실 이렇게 여행을 다녀왔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쁘게 찍어온 사진들을 보니 내 추억 하나는 이렇게 남겨놔도 좋겠다 싶어서 무지성으로 글을 써버렸다. 물론 이번 여행이 득이냐 실이냐를 따졌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여행을 잘 다녀왔다 싶다. 돈은 벌면 된다고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일이 있을 때는 많고 없을 때는 정말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버티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다음 여행도 일본을 가고 싶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케를 많이 사 오고 싶다. 지금 1.8L짜리 대형 사케가 두 병이나 있다. 빨리 먹고 싶지만 너무나도 아까워서 뜯지도 못하고 있다.


아무튼, 그냥 그렇게 일본을 다녀왔다고 쓰고 싶었다. 사진들도 보여주고 싶었고. (머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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