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끝맺음

끝이 있고 시작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by empty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다고들 한다. 시작은 내가 정할 수 있지만 끝은 상대방이 정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아픔이 느껴지고 더 오래가는 것 같다. 베이식의 노래 중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라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이별은 어렵기만 하다. 어렵다 못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를 뛰어넘는 것 같다.


나이가 든 만큼 수많은 만남을 했고 수많은 이별을 했다. 나에게 있어서 이별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수많은 이별을 했다고 하더라도 늘 겪는 이별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고 늘 누군가를 탓하기보단 나 자신을 탓하며 "그래, 내가 부족해서 우리가 이별하는 거야"라는 말로 포장 아닌 포장을 했던 적도 많다. 누군가와의 이별이 글의 소재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저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풀어내고 싶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헤어지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점점 질리기 시작했고 이내 이렇게 마음이 변해서 결국 혼자가 되는 거겠지, 혼자가 되어 늙고 혼자가 되어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맺어왔던 나로서는 끝나는 것이, 끝을 내는 것이, 끝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잦은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병원에서 상담을 받은 이유가 사람이 금방 질린다는 이유였을까. 그렇게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었고 불편했다. 사람들은 왜 나를 이용하기만 할까, 사람들은 왜 당연해질까, 사람들은 왜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해놓고선 모두 다 변하는 걸까, 약속을 안 지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대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사람마다 다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나에게는 한 사람을 오랫동안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찾고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만남을 시작하고 이별을 고하고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런 로테이션이 나 자신과 나를 만드는 환경까지 잡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은 결국 나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나 자신을 버려가면서까지 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이제 없다. 나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할 것은 아니라는 결심이 섰고 최소한 나 자신은 나를 버리지 말자라는 마음이 어느샌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모른다. 좋은 방식이 좋은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그것을 모르기에 이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체감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스쳐지나 보내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의 결말은 이별이구나 하는 간단한 공식밖에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아니고서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무것도 없다.


한참 예민한 시기에 예민함을 더한 시기에는 나 자신을 '버림받았다'라는 말로 포장했다. 저 사람이 내가 싫어서 나를 버리고 도망갔어, 떠나버렸어라고 이야기를 해댔지만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성 간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지킨 말을 지키지 않은 것. 나는 그것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를 모두 다 이용만 하고 떠나갔던 것 같다.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는 이유로, 까탈스럽다는 이유로, 억압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이유로 나를 다 그렇게 처리해버렸던 듯하다. 사실 내가 나를 보더라도 그들이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하긴 한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을 어떻게 버리고 새로운 기질을 어떻게 만들겠는가. 그냥 결이 맞는 사람, 비슷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만이 나에게는 최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이리저리 방황한 시간도 더 길어졌다. 시간도 길어지고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날이 가면 갈수록 에너지와 정신은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서른한 살이라는 나이를 맞이하고 나니 외로움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감정이긴 하지만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면서까지 외로움을 해결해야 할까?라는 의문점도 들긴 했다.


끝맺음이라는 제목을 쓰고 내용은 끝맺음과 관련 없는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고 있는 꼴이 퍽 우습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현실에서 입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 텍스트로 정리해서 전달하는 편이 나는 더 낫겠구나 싶은 확신이다. 말을 안 해서 답답하다는 말도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많이 들었으니 별 수 없는 걸까.


이제는 새로운 시작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오롯이 나 하나만을 놓고 봤을 때 그런 느낌이 든다. 내가 과연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 예민함의 과정들을 뚫고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눈앞을 가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4. 논스 뮤직 클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