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나는 나를

by empty

나는 나를 싫어한다. 각자 주어진 삶이 있고 주어진 재능이 있다고들 하는데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재능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경험 풀어내기 정도의 급급한 엉망진창의 재능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을 보아하니 현재 나의 감정 상태는 꽤나 불안하고 요동치는 것 같다.


요동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의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우물 같다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든다. 누군가가 사라지고 떠난 자리를 채우지 못해서 허전할 수도 있다. 마음 한가운데가 큰 결함이 생긴 것 같다. 메꾸지 못할 정도의 큰 구멍이 생겨 그 공간이 허무하고도 공허하다. 무언가로 채워 넣고 싶지만 채워 넣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당장 그 결함을 해결하고자 이것저것 구겨 넣는다면 나는 이윽고 무너지고 말지도 모른다.


슬프다.


슬픈 감정을 느껴본 적이 많지 않다. 요 근래는 더더욱 없다. 작년 2월, 서럽고 서럽게 울어댔던 기간이 있다. 그 기간에는 울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것이 일상이었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들과 술로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버텼다. 잠을 못 자도 정신이 깨어있었고 술을 많이 마셔도 정신이 아득해지지 않았다. 그것이 하늘나라에 있는 아빠와 마시는 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한다.


그때 이후로 아주 큰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슬프지만 슬픔에도 자라나는 것이 있듯이 나도 그래야겠지. 슬프지만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 그래도 슬프다. 슬퍼서 슬프다. 하염없이 울고 싶고 눈물을 쏟아내고 싶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눈물들이 밖으로 분출되었으면 좋겠다. 슬픈 노래를 듣고 슬픈 생각을 한다. 이게 나의 기본적인 감정선이었던 것 같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조금 많이 처진 사람이고 물속에 잠긴 듯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옅은 바다에 겨우 눈과 코를 내밀고 숨을 쉬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돈이 없었으면 없는 대로 살아왔고 열심히 살지 않으려고 했다. 열심히 살아봤자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느끼고 난 후에는 더욱더 열심히 살지 않으려고 했다. 글을 쓰는 행위도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하루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술에 빠져 허우적 댔던 시간도 있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뭐랄까 깨진 유리컵에 값비싼 술을 들이붓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느낀다. 아빠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이다. 사람을 위해 살았고 사람을 위해 죽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던 아빠가 1년 새 급격한 건강악화로, 죽음으로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단지 몸이 안 좋아서 집에 빨리 들어오고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챙겨 먹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 병원 방문하는 시간과 기간이 점차 늘어났고 집에는 처방받은 약봉지가 널려있었다. 티브이 선반 옆자리는 아빠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는 아빠의 개인적인 짐, 가방, 약, 영수증, 딸에게 받은 편지 등 다양한 것들이 놓여있었다. 딸이 일본에서 살고 있을 때 받았던 찢어진 편지를 아주 깊숙한 곳에 보관하고 있었던 게 갑자기 기억이 난다.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난 뒤, 그 집을 곧바로 처분하고 평수를 좁혀 다른 집으로 이사를 왔다. 거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빠 자리에 놓여 있던 물건들이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난다. 어렸을 때는 아빠 지갑에서 돈을 몰래 빼가기도 했는데, 그립다. 아빠의 흔적이.


슬픈 이유는 모르겠다. 원인도 모르겠다. 나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너무 행복한 삶을 살고 있고 삶의 질이 올라갔고 모자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고 물질적인 것이 되었건 마음적인 것들이 되었건 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왜인지 모르게 공허하고 허전하다. 그저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기 위한 소모품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아무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나 자신을 평가할 때 꼭 비관적이고도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 남들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불필요한 소모품이 된 기분이다.


사랑을 못 받아서겠지, 내가 원하는 사랑의 형태를 받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 존중받는 사랑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하지 않았던 것은 나 자신이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도 얼추 비슷한 맥락이겠지. 슬픈 것도 모두 나의 탓, 즐거운 것도 나의 탓, 행복한 것도 나의 탓. 행복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행복한 탓. 늘 무너져있어야만 하는 사람이 정상궤도에 오른 탓. 나의 인생은 탓 투성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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