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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ug 02. 2024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에 휘둘린다.

이유는 모르겠다. 우울증이 더 심해졌는지 아니면 무슨 병이 다시 새로이 생겨난 걸까 알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무수히 많은 검사들을 받아왔지만 우울증과 무기력증 말고는 다른 병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30대가 되고 30대 초반을 어물쩍 보내보니 그 이후의 삶은 쭉 내리막이었던 것 같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에 휘둘리지를 않나 이제는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서 감정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해졌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자극하지 않고 도발하지 않는 말을 하면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이게 내 문제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전적으로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 근래 감정이 더 심각해졌다. 화를 내도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화를 내기 시작했고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게 느껴졌다.


사실 무서웠다. 아니 무섭다. 내가 이렇게까지 변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 많이 변해버린 것 같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뿌듯함과 돈을 버는 쾌감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더 큰 불안함과 초조함이 나의 몸을 지배하는 것처럼 변해버린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보람차다는 느낌을 느낄 수 없었고 무언가 뿌듯함이라는 감정들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돈을 벌어서 행복하고 그 돈으로 여행도 다녀오고 가지고 싶은 것들을 산다는 것도 나에게는 이제 딱히 와닿지 않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이렇다 할 동기부여가 될만한 것들도 없고 왜 이렇게까지 살고 있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매일 든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요즘 잠까지 더 많아졌다. 누군가 깨우지 않고 하루종일 집에 혼자 있는 날이라도 생긴다면 계속해서 잠만 잔다. 지금은 새벽 3시 23분인데 오늘은 정말 너무 화가 나서 머리끝까지 폭발해 버릴 것 같아서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하지 않고 오후 6-7시 정도에 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선풍기를 틀어두고 베개 하나를 머리에 뉘이고 잠에 들었다.


맨바닥에서 아무것도 깔지 않고 자서 온몸이 뻐기고 한 자세로 오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내 수면 스타일 상 금방 깰 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금방 깨지 못했고 사경을 헤맸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깬 시간은 오후 11시 30분 정도 된 시간이었다. 그 시간까지 나는 내 몸의 스위치를 꺼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 선생님들도 항상 해주셨던 말들이 있었다. "너무 힘들면 본인이 기계라고 생각하고 몸 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스위치를 on에서 off로 바꾸어서 활동을 하지 못하게 강제로 내려서 몸의 휴식을 강제로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정확히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저런 현명한 방법을 알려주셨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생각해서 행동하고 내 몸의 전원을 꺼버린다는 기발한 생각은 어떻게 하셨는지 아직까지도 너무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처음으로 해야 할 일도 있었고 그 시간에 잠을 잔다는 것 자체가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워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지만 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다. 너무 고통스러웠고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게 느껴졌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마음도 의지도 전혀 없었다. 스위치를 내리기 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멍하니 10분 정도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내 몸 어딘가를 구석구석 훑고 지나가는 '화'라는 감정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대충이나마 느껴졌다.


심장 한가운데에서부터 시작해서 잉크가 번지듯 팔다리, 머리로 옮겨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몸이 뜨거워지는 것도 느껴졌고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까지 느껴졌다. 사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뭐라도 할 일이 생긴다. 글을 쓰거나 포토샵을 하거나 홍보나 광고를 한 번씩이라도 보고 수도 없이 정신없이 무언가를 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 세상과 하루빨리 단절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그 시간에 눈 감고 잠이라도 자자 라는 생각이 덜컥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잠을 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하루빨리 이 동네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이 동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정은 감정대로 피폐해지고 정신적으로 상당한 고통과 몸 안에 쌓여가는 분노가 점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것 같다.


친누나가 결혼하는 것과 결혼식 당일 엄마 옆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자꾸만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아빠도 없는 마당에 엄마 혼자 결혼식장 맨 앞자리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계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굉장히 아프고 시린 것 같다. 그때까지만이라도 긍정적으로 버티고 싶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그전에 내가 어떤 사고로라도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없을지도 모르겠다.


30대 중반의 중고 신입을 누가 채용해 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블로그나 온라인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내가 열정이 없는 건지 의욕이 없는 건지 아무리 찾아보고 난다 긴다 애를 써봐도 절대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라도 떳떳하게 돈을 벌고 있다고, 정상적으로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고 친한 사람들에게 거하진 않아도 밥 한 끼, 커피에 디저트라도 눈치 보지 않고 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사람도 잃고 나 자신도 잃어버리게 생겼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있을 이유가 있는 건지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무서운 말이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 같아서 덜컥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살 길을 찾아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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