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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10시간전

엄마는 취업을 했고 난 망한 것 같고

엄마는 평생 전업주부로만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배우자를 잃고 사회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곧바로 취업을 했다. 그렇게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행인지 우연인지 일했던 곳의 운영진들이 모두 바뀐다고 해서 실업급여를 받고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약 8개월가량을 쉬게 되었다. 그렇게 쉬고 나니 다시 일을 하는 것이, 다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이 꽤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2-30대도 아니기 때문에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계속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기도 했다.


물론 배우자를 잃고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하지 못한 나로서는 엄마가 참 대단하게만 보였다. 처음으로 취업을 한 직장에서 1년 이상을 버텼다는 것도 너무나도 신기했고 실업급여를 회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줬을 정도로 내부적인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렇게 받을 수 있는 것도 너무 신기했고 대단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아는 엄마는 친구가 없다. 일반적으로 가정주부를 몇 십 년 동안 해왔기 때문에 외부 생활과는 차단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주변인들과 엄마 기준으로 늦은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보통 엄마는 9시 30분 이후로 전화를 하면 받지 않고 잘 준비를 마친 상태다.)


이런 걸 보면 엄마는 처음인데도 연륜으로 버티는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충격들 때문에 마음을 더 강하게 먹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본가로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엄마의 반응은 언제든 돌아오라고, 언제든 집으로 들어와서 살고 네가 사회생활을 못하겠으면 나라도 먹여 살려야겠다는 말을 들었던 때가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이 내 인생에서는 너무나도 크나큰 위로와 위안이었다.


항상 엄마는 내가 면접 합격한 회사를 한 달, 일주일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안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굉장한 잔소리를 했던 사람이라 엄마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신기했고 또 신기했다. 저런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자 저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것도 너무나도 멋있었고 존경스러웠다. 이게 바로 연륜인가 싶을 정도로.


물론 나도 본가로 복귀하게 되면 뭐라도 하겠지만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긴 하다. 사진 쪽으로 가고 싶지만 이미 나이가 너무나도 늦어버리기도 했고 평생 알바나 하면서 죽을 팔자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즘 글을 쓰는 감정과 글의 농도가 점점 심해로 가라앉는 것처럼 무섭고 차가워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기가 아니라 관심이나 읽을 만한 요소가 없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럼 난 앞으로 글을 쓰는 이유도 없고 글을 써야만 한다는 강박이 사라질 것 같다. 그렇게 글 쓰는 것을 모두 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생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이렇게 쓰고 있는 것도 나름 발악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다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니 내 글이 좋게 보일리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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