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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Sep 25. 2024

인류애가 고갈되는 느낌

일을 하면 할수록 인류애가 박살나다 못해 고갈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는 데에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일단 내가 하고 있는 쪽의 직종은 대단히 치열하고 경쟁이 심하고 소위 말하는 고인물들과 뉴비들의 경험 차이가 어마무시하게 차이가 난다. 어떤 직종이라도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과 신입사원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이라고 일을 못할 수 있고 못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년동안 회사를 다닌 사람이 오히려 일을 못하고 어영부영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단지 회사생활을 잘해서 회사를 버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실력이 좋아서 실적이 좋아서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 걸 다 떠나서 일단 기본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말들과 행동, 눈빛 모든 것이 혐오스럽다는 감정까지 들 정도로 뭐랄까 일을 빨리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특성상 일이 없을 때는 정말 없고 많을 때는 쉬지도 못할 정도로 일이 많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들을 내 눈으로, 내 손으로 접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썩었구나, 오래 일을 해온 사람들은 그럭저럭 버텨내겠지만 제대로 된 각오도 되지 않은 신입들에게는 정말 어렵고 살아남기 힘든 생태계를 만들어놨구나라고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썩어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도시를 접하고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 둘 마주치다 보니 내가 몰랐던 어두운 면을 보게 되어서 그런지 인류애가 정말 하나씩 소멸되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몸에 베였던 서비스 마인드로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돈을 신경 써야 하고 그런 것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분명 이렇게 자유롭게 해 왔던 일을 그만두고 나면 다시 사회생활을 해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감이 전혀 오지 않지만 30대 중반의 아무런 스킬이나 고급스킬, 쓸만한 스킬조차 없는 나로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것마저도 막막하다. 지금은 인류애도 소멸되고 있는 와중에 내 앞가림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모아둔 돈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점점 끝에 다다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단순히 힘들다의 감정이 아닌 복잡한 감정이다. 예전보다 꼬였으면 더 확실하게 꼬여버렸고 이제는 내 힘으로 풀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글도 쓰고 나름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진행되고 있구나 그래도 일하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있구나, 도움을 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저 손을 놓고 있었다. 이렇게 해도 도움이 되겠어? 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순간 그 생각이 문득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조금 더 뭐라도 했다면 나 자신에게 후회스럽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이 직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외부인들은 모르는 금기시되는 것들도 굉장히 많고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러니까, 갑과 을의 구조가 너무나도 확실한 곳이라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모든 회사생활이 그렇겠지만 유독 더 심한 것 같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자의 역할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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