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일은 일대로 힘들고 받는 스트레스는 극심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자니 그저 한심하게 나이만 들어가는 노총각 혹은 노인네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더 슬프게 다가온다.
얼마 전 오후 8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가방에 노트북과 이것저것의 짐을 싸들고 편의점 야장 테이블에서 술을 먹으려고 계획을 했었다. 처음에는 누가 지나가도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소주 페트병과 물 1.5리터, 컵라면 한 개와 나무젓가락을 테이블에 세팅해두고 나니 정말 누가 따라 해도 그렇게 처량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량하고 노총각 백수의 느낌이 나 자신조차 느껴지곤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구나 체감을 하게 됐다. 최근에 느낀 자괴감 중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감정이었던 것 같았다. 30대가 되고 난 뒤 어느 정도 나도 늙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처절하게 처량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술을 마셨지만 심지어 취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어서 길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고 커플부터 젊은 사람들, 야근하고 퇴근하는 직장인 같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술을 마셨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시야에는 계속해서 그런 사람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혼자 처량하게 제대로 된 안주도 없이 깡 생수에 소주만 들이붓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 같아도 눈길 한 번쯤은 갔을 것 같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갈 곳도 없었고 혼자 술을 마실 건데 술집에 들어가서 한 병에 5,000원이나 하는 소주를 몇 병이나 마실 자신은 없었다. 돈도 그렇게 여유롭게 많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인생이 20대 중후반부터 나름 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가 계속되는 느낌이다. 물론 그 시기도 고점이라고 말하기엔 아무것도 가진 것도 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요즘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굉장히 많아졌다. 운전면허를 작년 6월에 취득해서 1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운전을 해본 적이 없다. 이제는 1년이 지났기 때문에 돈을 주고 차량을 빌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빌려서 사고가 나는 게 나는 더 무섭다. 그래서 운전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무서워서 하지 않을 뿐인데 사람들은 나에게 운전을 하지 않느냐고 잔소리 같은 말을 많이 한다. 뭐 30대 중반이나 된 사람이 운전 하나 제대로 못한다는 느낌으로 받아지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글을 쓰는 행위와 나름 홍보수단을 잘 이용하고 남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아빠의 수십 년 영업맨의 의지를 이은 건지 일을 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꽤 괜찮은 이미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자신할 수 없게 됐다. 그나마 지금처럼 살찌지 않았을 때는 꾸미기라도 하고 얼굴에 분칠이라도 하고 다녔었고 나름 최소한으로 몸무게를 조절하고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15kg 이상 살이 찌고 간 수치가 100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나 자신을 놔버린 것 같다.
술이 없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말 입원밖에 답이 없는 걸까 싶은 생각마저도 든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 뭘까 아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뭘까. 이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괴리감이 오고 인류애도 점점 사라지고 내 몸에 있는 수분이나 감정 같은 것들이 모조리 메말라가고 있다. 모든 것이 마른 화분처럼 바싹 마른 걸 보니 내 삶은 어찌 보면 더 이어나가는 게 남들에게 더 많은 피해와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게 아닐까?
초등학교 때 살던 아파트의 옆옆 집에 있던 친한 형과 할머니가 같이 살았었는데 그 형은 매번 우리 가족의 대상이 되었다. 왜 저렇게 백수처럼 집에서 먹고 놀고 할머니 등골만 빼먹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거의 볼 때마다 했는데 그게 부메랑이 되어 나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저 형은 왜 매일 집에만 있을까? 왜 관리를 안 할까?라고 생각했는데 그 역풍을 되려 내가 맞고 있다. 그것도 나 자신에게.
아마 요즘 mz세대가 나 같은 나이의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더욱더 처절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렇지 않게 남들 앞에서 남을 욕하고 눈치를 보지 않고 주변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예의 없이 행동하는 걸 보면 나도 늙어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