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20대 중후반부터 집안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막연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이대로 죽는 것과 이대로 죽는다면 부모님은 어떤 생각이 들까?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나는 나대로 너무 힘들고 의욕도 무기력증을 온몸에 덕지덕지 바른 것처럼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이 굉장히 막연하다거나 꿈같은 일이라거나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조금의 용기만 낸다면, 아주 작은 도전을 할 수 있는 자신감만 있다면 나는 언제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걸 안 계기는 몸에 있는 것들을 바닥에 흘러넘치게 쏟아내고 난 뒤로는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문제가 되었고 격하게 움직이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정도로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그렇게 문턱에 다다른 후에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소리소문 없이 내 방에서 죽어버릴 것 같아서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고 의사 선생님의 소견으로는 현재 체내에 혈액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니까 양을 늘려줄 수 있는 약을 받아왔다. 물론 쉽게 다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약을 제때 먹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막내삼촌이 패혈증으로 돌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가족들과 병원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장례식장을 준비해서 보내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지방에서 올라온 친척누나가 간호사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이야기를 하면서 "누나 몸에 피가 충분하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생겨?"라고 물어봤고 누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해줬다.
대답을 다 해주고 난 뒤 왜 그러냐고 되물었고 내가 요즘 몸에 피가 부족한지 그런 증상들이 있길래 물어봤다고 했다. 누나는 건강 수치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 누나도 그 수치를 보더니 바로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왜 그렇게 수치가 낮은지 모르는 척을 했다.
그렇게 막내삼촌을 보내고 막내삼촌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술집 사장님들하고 그렇게 투닥거리고 먹고 노는 걸 좋아했던 삼촌은 그렇게 인생의 결말이 좋지 않은 상태로 끝맺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이라도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최소한 죽더라도 저렇게 억울하게 죽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를 떠나보내고 나서 친척들의 배신과 뒤통수 등을 모두 견뎌냈다. 물론 나 혼자 견뎌냈다고 보기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안의 장남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내려고 했고 가족들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말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남은 집을 처분하고 그 돈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최선의 아파트를 선택해서 이사를 갔다. 이건 지극히 내 생각이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아파트를 자식들에게 넘겨줄 수만 있다면 나는 나름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이 말이 사실 이 글의 핵심이기도 하다. 나에게 주어진 생활이 원룸이나 떠돌이 생활이 아닌 내 앞으로 된 작은 집이라도 하나 물려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 큰 오산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집이 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이러나저러나 관리비나 여러모로 돈이 필요한 건 맞지만 그래도 집이 있으니까, 내 집이 있으니까,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것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3-4억짜리 서울 외곽에 있는 집을 물려받는다고 한들 내가 과연 행복할까? 그 집에서 내가 돈을 벌거나 모을 수 있는 능력이나 재능은 있긴 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예전부터 돈이 하나도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음악이라던가 글쓰기라던가 술을 너무 좋아하는 습관이라던지.
그래서 최근에 엄마를 만나서도 그렇게 말을 했던 것 같다. 엄마도 나이가 들고 몸이 하나 둘 망가지기 시작하는 와중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나도 마음이 알게 모르게 쓰였나 보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겠지만 엄마가 진짜 돈이 없다면 자식들한테 아파트 물려줄 생각하지 말고 주택연금으로 매달 몇십 만원씩이라도 받으면서 살아도 돼"라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잠깐 멈칫하더니 "부모가 되어서 자식한테 물려준 것 하나 없어도 억울하지 않겠냐?"라고 말을 했는데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집이 있다고 한들 난 여전히 그 집에서 술 마시고 무기력하게 지낼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다행이지 친누나와의 재산다툼도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아빠 그동안 돌보고 신경 썼다는 비용으로 2-3천만 원씩 뜯어간 걸 보면 분명 재산싸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없다고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부모를 다 잃고 남은 자식들끼리 재산 가지고 싸우고 뜯고 할 바에는 차라리 모든 걸 0으로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나도 누나도 아빠처럼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삶이 되는 거겠지.
나에게 필요한 건 뭘까. 뭐라도 하고 무슨 결과물이라도 있어야 뿌듯하고 보람차다고 하루를 되새김질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것도 없다. 누가 보면 불쌍한 영화의 남자 주인공처럼 보이겠지만 내 삶은 누구보다도 처량하고 비참하다 못해 쪽팔린 삶이 되어버렸다. 이겨내는 방법조차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