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640ml짜리 페트병의 소주를 매일같이 2-3개를 사면 술값으로만 만원 이상이 나가기 때문에 몇 개월 전부터 코스트코에서 파는 1.8리터짜리 2개 묶음 소주를 사서 먹었다. 아주 가성비가 훌륭했고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만한 가성비만한 술이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참 동안을 사다 먹었는데 그렇게 어느 정도 먹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술이 더 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술을 취할 때까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신다고 생각이 들었다.
1.8리터 소주를 먹으면 페트병으로 소분해서 그때그때 먹곤 하는데 많이 먹으면 페트병 3개까지 마시곤 했다. 그렇게 정말 천천히 양이 늘어나는 걸 느꼈다. 물론 그렇게 먹는 게 훨씬 위험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자제가 될 줄 알았다. 어느 정도 먹고 취기에 잠에 들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매일 먹다 보니 이제는 정말 표면적으로 몸에서 문제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간을 보호해 주는 약도 매일 먹고는 있지만 들어가는 알코올의 양이 무식하게 많아졌기에 간을 보호하기에는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차라리 이럴 거면 도수를 센 소주를 마시면 일반 소주 먹는 양보다 덜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빨간 뚜껑 소주를 편의점에서 사서 먹어봤는데 아주 예전 20대 초중반의 어느 날 집에 술이 없어서 아빠가 드시다 남은 빨간 소주를 방에서 몰래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도수가 센 술을 마셔본 날인데 정말 무서울 정도로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걸 체감상 느꼈다. 너무 무서웠다. 같은 소주라고 해도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구나 느낄 정도로 심각했다. 일반 소주만 먹다가 도수가 센 술을 마시니 사람이 정말 마약을 한 것처럼 일순간 성격이나 생각 회로 등이 고장 난 것처럼 폭주하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몸이 변하는 걸 느끼고 나서부터는 빨간 소주를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뼈저리게 느꼈던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다시는 내 인생에서 빨간 소주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일반 소주를 마시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정말 심각할 정도였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 거진 10년도 넘은 것 같다. 다시금 빨간 소주를 먹었는데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지라 덜컥 겁은 났다. 하지만 무난한 도수로 많이 마시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줄이는 게 좋겠다 싶어서 편의점에서 정말 오랜만에 빨간 소주를 사서 먹어봤다. 일반 소주를 마실 때는 일본에서 사 온 사케잔에 먹곤 하는데 보통 용량이 100ml~120ml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런 큰 잔에 술을 끝까지 따라서 한번 마실 때 반씩 마셨었다. 물론 저 아래 있는 히노끼 사케잔은 있긴 하지만 그렇게 세팅해서 먹지는 않았다. 사케잔이 100ml라고 하면 한번 마실 때마다 입안 가득 최소 4-50ml는 마신다는 소린데 그렇게 계산해 봤을 때 마시는 양이나 속도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기에 더 빨리 취하고 더 빠르게 몸이 망가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빨간 소주를 마시기 전에 걱정을 했다. 이건 절대 저렇게 먹을 수 없다고 저렇게 먹다가 정말 간이 골로 가버릴 거야라고 생각했고 일반 소주잔에 반씩 따라 마셔보았는데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었다. 결국 그렇게 마셨는데도 하나를 다 어찌어찌 먹긴 했다. 이게 술을 좀 줄여보자고 마시는 건데 일반적인 소주를 마시는 양과 같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술을 많이 마셔서 몸이 망가지는 건 둘째치고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가 되어버렸다. 하루종일 밥을 안 먹고 몸무게를 재도 도무지 키로수가 줄어들 양이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생활패턴이 무너졌다는 건데 그건 또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막막하다.
최근에 조금 많이 서럽게 운 적이 있었는데 내가 정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고 싶다는 의지나 생각조차 아무것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 이제 인생이 서서히 끝나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울었는데 나도 이놈의 술과 지독한 인연을 끊고 싶지만 이것마저 내 인생에서 사라진다면 정말 내 인생은 아무런 재미도 없고 반 죽은 사람처럼 살아갈 것 같다. 합리화라고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냥 지금 나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사람들과 다른 것들에 의지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나에게 놓인 모든 상황 중에서는 이게 최선의 답인 것 같다.
이게 답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이 정도 되면 입원을 해서 강제로라도 끊어야 할 판인데 그렇게 하면 인생을 사는 낙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이것마저 사라지면 난 정말 어떻게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