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샀는데 쓰질 못하겠다

by empty

그렇게 비싸고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싶어 했으면서 왜 쓰지를 못하는 걸까?


이 집에 들어오면서 가장 바뀐 나의 태도는 집 밖으로 강박증처럼 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즐거워서, 사진 찍는 것이 즐거워서 나의 의지로 나가려는 것이 아닌 집에서 마주치기 싫으니 반사적으로 집을 나가려고 하는데 카메라를 들고나가려니 마땅한 카메라 가방도 없거니와 이렇다 할 준비물도 없다. 그리고 워낙 조심성이 많기 때문에 카메라 필터를 살 때 스트랩을 묶는 법을 모르겠어서 혹시 묶어주실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묶어주시던 카메라샵의 담당자님이 정말로 너무 반가웠고 구세주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분이 직업상 카메라를 매우 많이 만지시고 판매도 하시고 스트랩도 몇 백번은 묶어보셨을 거라 알아서 잘해주셨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저 비싼 카메라를 쌩판 모르는 남이 묶어준 스트랩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내 손으로 안전장치를 몇 번이고 확인하면서 혹시나 줄이 풀려서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한 마음에 카메라를 들고나가는 것도 너무 무서워졌다.


그렇다고 인터넷에 어디 카메라샵 직원분이 스트랩을 묶어주셨는데 카메라를 메고 다니다가 떨어지면 어떡하죠?라고 문의를 남기거나 글을 쓰는 것도 참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도 했다. 남들은 "어련히 잘 묶어주셨겠죠, 그런 일만 하시는 분들인데 믿고 나가보시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로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지만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그들을 탓할 수밖에 없다. 가지고 나가라면서요?라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혼자 마음속으로 '그러니까 왜 가지고 나가라 그래서 이 비싼 카메라 스트랩이 풀려서 팔지도 못하게 만든 거야 진짜'라고 있는 욕 없는 욕을 마구마구 퍼부었을 것이다.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일단 카메라가 너무 고가의 장비라서 쉽게 어디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메모리 카드도 카메라의 사양에 맞게 맞추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메모리 카드를 사려면 5-60만 원은 줘야 제대로 세팅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 당장 구매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전문적인 카메라가 없어서 만약 가지고 나간다면 어깨나 목에 스트랩이라는 것에 200% 의존을 해서 다녀야 한다는 소린데 이 스트랩이 가장 큰 걱정이고 공포다. 만약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나는 이 고가의 물건을 다시 팔 수도 없고 그저 감가상각만 계속해서 진행되는 옛날 카메라만 들고 있어야 된다는 소리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한번 떨어뜨리고 몇 번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모든 것을 내려두고 어디를 가던 마음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더라.


이 비싼 카메라가 집에서 썩고 있다는 생각에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나가봤지만 정말 특이하게 1층에 도착해서 아파트 밖으로 다섯 걸음 나가니까 눈발이 휘날렸다. 그 약간 모래폭풍처럼 모래알들이 날아다니는 그런 느낌으로 눈발이 휘몰아치는데 당장 이 카메라를 눈이나 비를 맞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또 그냥 들어오고 말았다.


물론 카메라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은 제대로 된 장비가 있고 지식이 있고 고장 나더라도 수리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돈도 없는 상황에서 이 비싼 카메라가 고장나기라도 한다면 난 정말 돌이킬 수 없기에 점점 카메라를 애지중지하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등신같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이 카메라보다 3-400만 원 더 비싼 카메라를 사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이라고만 생각이 든다. 이 카메라도 이렇게 못 들고 다니고 애지중지 다루는데 그 카메라를 샀으면 정말 관상용으로 보관함까지 따로 샀지 않았을까 싶다.


아, 난 왜 이렇게 전자기기를 아끼는 병이 있을까. 진짜 스트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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