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다가 봉변당한 하루

저 아세요?

by empty

요즘 몸 상태가 굉장히 좋지 못해서 독감일까 싶을 정도로 몸이 안 좋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 내 방이 굉장히 추웠다. 복도식으로 되어있는 아파트라 찬바람과 바로 벽 하나만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하더라도 냉기가 벽과 창문을 타고 스멀스멀 내 몸으로 다가오는 걸 막지 못했다. 부랴부랴 너무 춥고 감기기운이 들 것 같아서 다이소에서 뾱뾱이까지 붙였지만 소용이 없다. 조만간 암막커튼을 사던가 해야겠다. 심지어 책상도 창문 벽을 오른쪽에 둔 구조로 만들어놔서 옷을 두 겹 씩 껴입어도 춥다.


그래서 하루종일 감기기운과 추위와 재채기로 하루종일 시름시름 앓다가 어제 약을 먹고 자서 그랬는지 오늘은 오후 늦게 일어났다. 겨우 라면과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부랴부랴 씻고 카메라를 들고나갔다. 뭐라도 찍고 무슨 사진이라도 보정을 하는 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아서.


그렇게 나가서 똑같은 루트지만 다른 골목길들을 여지없이 찾아다니기 바빴고 역 두 개 정도를 걸어 다니고 역시나 카메라가 어깨 스트랩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칠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에 카메라를 가슴 쪽에 포개듯이 들고 다녔다. 물론 내 옆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을 몰래 찍을 수 있는 구도는 절대 아니었다. 패딩 때문에 렌즈가 다 가려지기도 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골목길과 사람 없는 으슥한 곳만 사진을 찍고 다니길 3-40분 정도 되었을까 사람 두 명이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보도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떤 아줌마가 내 옆을 힐끔 쳐다보면서 지나가더니 몇 번을 내 카메라를 보고 내 얼굴을 두리번두리번 대면서 내 앞길을 막길래 끼고 있던 에어팟을 빼고 무슨 말을 하나 들어봤다.


"그 여기서 무슨 사진 찍으시는 거예요?"부터 시작해서 "무슨 사진 찍으시는지는 모르겠는데 한번 보여주세요" 등 굉장히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을 거침없이 뱉어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네? 네 저 그냥 이 동네 카메라 처음 사서 동네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있는데요?" 했다.


"여기서 사진 찍는 건 상관없는데 초상권 있어서 그렇게 함부로 막 찍고 그러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길래 정말 너무 어이없어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하고 보여줬더니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또 초상권을 언급하면서 조심하라는 둥 다른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수 있다는 둥 이상한 말을 하고 다녔다. 그래서 난 마지막으로 "저 사람은 안 찍고 건물이나 골목길만 찍어요"라고 말했더니 아 네 뭐 이러더니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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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 당황스러웠다. 물론 내 카메라 렌즈가 사람을 향해 있기는 했었지만 계속해서 찍으려고 주시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최대한 오해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 아줌마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굉장히 무례했다. 조심히 와서 조용히 이야기했던 것도 아니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면서 본인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쓱 가더니 내 기분이란 기분은 다 망쳐놓고 그렇게 가버렸다.


그렇게 정말 당황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흥분이 가시질 않았지만 생각을 해봤다. 저 사람이 누군데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달라는 건지? 저 사람이 뭔데 남들 초상권이 있네 마네 그런 말을 하는지? 카메라를 찍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초상권이란 개념이 훨씬 더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 중 하나인데 그것도 모르고 일반 사람들 얼굴을 막 찍어댈 거라고 생각했던 그 아줌마가 더 무지하고 무식했던 것 아닌가?


화가 사라지질 않아서 거의 20분 동안 씩씩대면서 걷다가 너무 황당스럽고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걷다 말다 걷다 말다를 수십 번 반복하다가 집에 들어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남들에게 모두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박혀있고 예의, 매너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앞으로 그렇게 무례하게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나도 똑같이 해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쪽이 뭔데 제가 찍은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혹은 "그쪽 뭐라도 되세요?"라고 말할 걸 그랬다.


하.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사니 이런 일도 겪는구나 싶다. 동네가 정말 썩어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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