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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아무런 감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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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으로 말하긴 굉장히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생일이었다.


내 생일은 내가 정할 수 없기에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지만 내 생일은 정말 불행하게도 항상 설날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올해는 정말 설날 당일과 날짜가 겹쳤지만 그전부터 어렸을 때는 항상 친구들과 만나기 힘든 날짜였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항상 내 생일은 방학이 껴있다 보니 친구들과 만나서 뭘 하기에는 너무 힘든 나날들이었다. 사실 그 나이대의 친구들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저냥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남들과 같이 미역국을 먹고 가족들에게 선물을 소소히 받고 케이크 커팅식을 가지고 2-30분 같이 먹으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왔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내 생일은 정말 국가에서 빨간 날로 정해야 하는 것처럼 굉장한 무게가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된 순간부터 30대가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SNS에 목매달았던 것 같다.


그건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아찔했던 것 같다. 지금 시대에도 "나 잘 살아요, 나 돈 잘 벌고 잘 먹고 다녀요"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게시글들은 여전했지만 나의 20대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페이스북에서 연결된 친구들의 생일에는 항상 다른 친구들이 생일 축하한다며 댓글을 무수히 많이 달고 생일자는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들과 기프티콘을 하나의 사진으로 정리해서 올려서 "나 친구도 많고 선물도 많이 받았어요"라고 어필하는 친구들이 꽤나 있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참 웃기기만 하다. 지금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은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나는 내 생일이 되는 자정에 꼭 핸드폰 화면으로 캡처를 하고 그 사진이나 내가 생일이라는 걸 올렸는데 이상하리만큼 내가 쓰는 글이 친구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누구 하나 축하해 주거나 반겨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생생하지만 그 일 때문에 혼자서 상처를 받았던 기억들도 있다. 물론 친구들이 많이 없었던 시절이라 뭐 그렇게 상처되는 일도 아니었다고 이제 와서 생각은 하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친구들이 축하한다는 한마디나 남들에게 있어 보이려고 그런 댓글들이 뭐가 그렇게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 자랑일 뿐이었을 텐데


그렇게 나이를 먹고 30대가 되고 나서는 생일이라는 걸 딱히 챙기려고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 마음만은 그랬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생일파티를 하고 선물을 받고 그렇게 하는 행위가 꽤나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34살의 생일이 되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보냈다.


나는 이미 서서히 몇 년 전부터 생일이라는 것에 힘을 빼고 생일이 뭐 대수야?라고 받아들이고 있었어서 그런지 오히려 받아들이기 쉬웠던 것 같다. 생일 전날에는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정신 차려보니 오후 시간이 되었고 혼자 생일 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다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무기력한 상태가 된 것 같아서 계속해서 잠만 잤다. 그러고 정신을 차려보니 오후 6-7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다가 가족들과 햄버거를 먹고 난 뒤에 사우나를 혼자 다녀오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물론 다른 글로 쓰려고 아껴둔 소재가 있긴 하지만 엄마와 할머니에게 세뱃돈과 생일이라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받기도 했다. 이 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생일이라고 용돈이나 받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이렇게 무기력한 생일을 보내려니 다음 생일은 또 얼마나 더 무너질지 궁금하다. 이제 나도 늙어서 생일이라고 하루종일 파티하고 술 마시고 하는 건 생각하지도 못한다. 다른 젊은 사람들처럼 근사한 술집을 빌려서 생일빵이라는 면목으로 섞어둔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고 밤새도록 놀고 하는 건 이제 지쳤다.


사실 그렇게 파티를 꾸며줄 수 있는 친구들도 없기 때문에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게 정상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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