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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주신 세뱃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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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할머니를 뵈러 간 적이 없다. 서울과 지방의 거리는 아니고 같은 서울권에 있어서 오고 가며 얼굴이라도 비출 수 있는 거리지만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 댁을 가지도 않았고 할머니와 연락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


내 기억에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뵀던 건 아버지의 장례식장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는 얼굴도, 목소리도 어떤 것들과의 접점이 전혀 없었다. 할머니 연세가 굉장히 많으신데 몇 달 전에 크게 병원에서 문제가 생기고 난 뒤에 조심하시는지 다행히도 건강이 돌아왔고 아직까지도 잘 지내시는 것 같다.


내가 할머니를 어려서부터 만나기 싫은 이유는 할머니는 누나를 특히 좋아했다. 할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손자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다 같이 명절에 할머니를 뵈러 가도 늘 관심사는 누나였다. 물론 이게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고 엄마도 할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꽤나 크다고 했다. 물론 나보다야 더 직접적인 인물이라 엄마의 엄마에게 받은 상처는 아직까지도 괴로운 아픈 손가락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엄마도 할머니를 의지하고 믿지 않는다. 물론 가족이니까, 나의 엄마니까 기본적인 도리는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3-4년이 되도록 할머니를 뵌 적이 없다. 사실 뵙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에게 있는 그 작은 상처들은 하나씩 모여서 점점 큰 응어리가 되어버렸고 이제 와서 할머니에게 제가 할머니를 용서할게요라고 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일이고 그냥 이렇게 거리를 둔 채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는 엄마의 편에 항상 주시는 건 아니고 명절이니까 애기들 용돈 주라고 돈을 얼마씩 봉투에 넣어서 보내시곤 하셨다. 할머니의 정확한 연세는 모르지만 아마 80세나 90세가 넘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자식의 자식을 챙기는 걸 보니까 괜히 마음이 미어지기도 하고 내가 괜한 자존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할머니는 연세가 있으셔서 정확히 내가 받은 상처가 어떤지 모르실 테지만


그렇게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봉투를 마주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런 게 어른들이 느끼는 짐이라는 걸까? 밉고 죽도록 싫어도 내 가족이니까 그렇게 챙겨야 하는 마음일까? 어른이라면 상처보단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아직까지도 아주 어리디 어린 어린아이인 걸까?


할머니의 세뱃돈은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감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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