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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멈췄으면 좋겠는데

by empty

아직까지는 내 의지로, 내 손으로 무언가를 멈춘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술에 취하면 꼭 먹는 감기약이 있었는데 이 감기약을 먹고 자면 다음 날이 사라지는 마법을 겪을 수 있었다. 감기약과 숙취의 시너지가 어마어마해서 자고 일어나면 개운하기도 했고 무언가 몸이 몽롱해지는 느낌이라 약에 취해서 비틀대다가 그렇게 또 술을 마시고 약을 먹고 몇 개월동안은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렇게 감기약을 먹으면 간이 급성으로 안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술과 약을 같이 먹지 않았지만 몸이 한 번씩 고장 나서 감기에 걸릴 때면 약을 종종 먹곤 했다. 그래서 내 간 수치가 안 좋아졌을 수도 있고 아빠의 피를 물려받아서 술 자체를 못 마시는 몸이 될 수도 있었겠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몸이 2-3일 동안 좋지 않았고 감기라는 걸 한 번에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애매모호한 몸 상태였다. 그렇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유독 추운 우리 집은 정말 추워서 수전이 동파될 정도가 아니라면 난방을 켜질 않는다. 물론 엄마는 내 방이 복도라인에 있다 보니 추우면 난방을 켜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엄마가 혼자 살던 집에 들어와 얹혀사는 주제에 나 하나 따듯하게 지내자고 난방을 켤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항상 추웠다.


난방을 켜는 집도 아니었고 난방비와 냉방비가 무서워서 한 겨울이나 한 여름에도 에어컨보단 선풍기, 난방보단 전기스토브 같은 것들로 항상 매년 버텨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빠는 집이 너무 추웠는지 바닥에 까는 난방재 같은 걸 가져와서 온 집구석을 깔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도 사실 추운 건 마찬가지였는데 그렇게라도 따듯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차디찬 집에서 반 평생이란 시간을 살아와서 그런지 집에서 긴 바지, 반팔티에 후드티나 집에서 패딩조끼나 경량패딩을 입고 자는 날이 많아졌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 왔었다. 그렇게 입어도 발바닥이 시릴 정도로 집이 추웠어서 그런지 감기에 걸렸다는 느낌이 빡 들었다. 코는 막히고 눈물은 계속 줄줄 새고 콧물도 질질 새고 재채기는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그렇게 약을 먹고 약 기운이 돌아서 기절하기 직전까지만 술을 조금 마시다 자야겠다 생각을 했고 얼마 마시지 않아 약 기운은 급격하게 날 뒤엎었고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을 때 양치도 하고 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약이 몸으로 퍼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양치를 하면서도 꾸벅꾸벅 졸 정도라던가 그 정도였다.


그렇게 빠르게 잘 준비를 하고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잤는지 핸드폰 알람을 울리지 않았는데 분명히 난 약에 취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꾸만 핸드폰을 확인하고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강박처럼 핸드폰에 알람이 오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지 모르겠다.


그때 느꼈다.


지금 엉망진창인 나를 멈출 수 있는 건 약 밖에 없겠다-라고. 절대적이라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밤새 술 마시고 우울하다고 주절주절 글이나 쓰고 할 일 없어서 자책이나 새벽 내내 하는 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그 약 하나뿐이었다. 이 약도 물론 나의 근본적인 것들을 잠재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전원버튼을 강제로 끄는 방법밖에 없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 약이 뭐길래, 이 약을 먹지 않으면 왜 나는 멈출 수 없는 걸까. 새벽이 좋다고 새벽 내내 술을 마시고 해가 떠서 잠에 들면 하루를 내던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거야 도대체.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이제 정말 사회로 나가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건지 사회생활이나 회세상활, 세상에 나는 나갈 수 있는 건지조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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