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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꾸거나 잠을 못 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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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은 1988년에 사용 승인을 받은 오래된 아파트다. 그리고 아파트 구조도 일자식이 아니라 네모식으로 가두리 양식장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거실과 안방은 베란다와 창이 하나 더 있기 때문에 그렇게 춥지 않은데 내 방은 바로 창문이 있고 복도와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찬 바람이 직접적으로 방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다. 물론 블라인드도 있고 창문에 뾱뾱이를 붙여두긴 했지만 벽을 만져보면 그냥 냉기가 우후죽순으로 방으로 들어와서 항상 긴팔, 반바지를 입고 있어야 할 정도로 방이 춥다.


아직도 밤낮이 제대로 돌아오질 않아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지만 최근 술을 마시고 늦게 자더라도 일부러 알람을 설정해 놓고 되도록이면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은 오후 12시 정도에 알람을 설정해 놨는데 이상하게 이 방에서 잠을 자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방이 추워서도 아닌 것 같고 침대가 불편해서도 아니다. 그냥 이 방에서 잠만 자면 이상하게 수시로 잠에서 깨는 강박 같은 느낌이 들고 나는 한 자세로 못 자는 편이라 이리저리 굉장히 많이 뒤척이는 편인데 그러면서도 잠에서 깨고 이불을 덮지 않고 있으면 냉기가 바로 몸으로 전해져서 이불을 다시 덮으려는 행동을 하면서도 잠이 자꾸 깬다. 그렇게 자꾸 깨서 점점 일어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술의 영향도 있겠지만 술보다는 다른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은 그렇게 오후 12시 즈음에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부랴부랴 숙취로 머리가 아프지만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대충 급하게 밥을 해결하고 소파에 앉아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내 피드는 정말 극과 극이라서 음악 피드 아니면 여행 피드밖에 없다. 간간히 버튜버도 있고 영화 요약해 주는 유튜브도 있다.


그렇게 몇 개의 영화를 봤을까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조금 소름 끼쳤던 것은 분명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3-4시가 지나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밥을 먹고 대충 소화를 시키고 카메라를 들고나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흐른 시간을 보자마자 오늘은 나가면 안 되겠다 싶었고 심지어 오늘은 날씨도 추워서 나가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니 마음이 놓인 걸까? 급속도로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밥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일까 모르겠지만 그렇게 꾸벅꾸벅 졸면서 점점 몸이 소파와 한 몸이 되었고 tv는 아무거나 대충 틀어둔 상태로 엎드려서 잠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렇게 잠든 시간이 4시 30분 정도였다. 이 시간에 알람을 설정하지 않고 잠에 들면 언제 일어날지 몰라서 40분 후에 알람을 설정해 두고 그때 일어나서 다시 나가던 씻던 하자-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난 10시가 다 된 시간에 눈을 떴다.


알람을 분명히 들었고 내 손으로 알람을 껐다. 그렇게 했는데도 쉽게 잠에서 깨지 못했다. 그렇게 뒤척이면서도 잠을 잤는데 이 소파에서 잠을 자니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흘렀지만 생각보다 잠을 잘 잤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꿈을 4-5편은 꾸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떤 꿈이었는지 생각이 아예 나질 않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사람들이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꿈이었던 것 같다. 내가 불리한 입장이라거나 내가 항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사니까 그런 부분과 연결된 느낌이었다.


일어나서도 한동안 멍 한 상태로 꿈을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너무 다양한 꿈을 실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꾸다 보니 항상 그런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면 한동안 머리가 아프다. 도대체 왜 나는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내가 항상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 꿈만 꾸는지.


방에서 잠을 자면 어떠한 이유인지도 모를 것 때문에 잠을 뒤척이고 잠에서 깨질 못하고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면 생각보다 깊게 푹 자긴 하는데 악몽을 꼭 꾼다는 것과 꿈이 무슨 영화나 단편드라마처럼 한 편씩 꾸는지 이 상태가 왜 이러는지도 사실 모르겠다.


내 하루는 남들의 반밖에 되질 않는다. 언젠가는 고쳐지겠지 고쳐지겠지 하는데 이대로 살다가는 고쳐지지 않고 이대로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다.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날이 풀릴 생각을 하질 않는다. 점점 내 시간은 더욱더 빠르게 흐르고 있고 내 상태는 여러모로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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