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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듣는 노인들의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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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마도 사회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굉장히 막막했다고 했다. 교회의 아는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다고도 하고 주변에서 배우자를 잃은 엄마를 가엾이 여겼을까? 이런저런 위로들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줬던 것 같다. 물론 엄마의 오피셜은 아니고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엄마는 사나 죽으나 교회에 머무를 분이라.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는 굉장히 강요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 반발심으로 오히려 교회 가서 헌금하라고 받은 돈으로 교회를 가지 않고 pc방에 가거나 하기도 했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으니 뭐 합리화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엄마는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학원까지 다니고 학원에서 취업까지 연계해 주는 프로그램을 듣고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공부와 실습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 일자리를 소개받아서 첫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몇 년 전 사정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최근에 요양보호사 일이 많냐고 물어보니 나이 많은 노인들이 많아져서 일은 넘쳐난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도 슬슬 늙어가는 축에 속해 있기 때문에 최대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물론 엄마 의지만으로 하고 싶은 일과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들어간 요양보호 센터에서는 2년이 조금 넘게 다녔다. 그렇게 센터를 다니다가 지금은 센터보다는 개개인이 시간제로 일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오늘 엄마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엄마는 오늘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걸 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얼마 전부터 새롭게 관리를 해드리는 81세 할머님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 이야기인즉슨 81세 할머니가 당뇨 때문에 발이 썩어 문드러져서 발을 절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당뇨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를 주기까지 했다. 당뇨는 손을 쓸 수가 없고 그렇게 무너지는 거라고도 이야기를 했다. 물론 당뇨가 됐건 심정지가 됐건 나는 모든 병이 무섭긴 하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질병 보험이 있겠지만 나는 지금 실비보험도 당장 살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그것마저도 해지를 해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하고 있다. 결론은 해지하면 오히려 나에게 손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돈을 조금씩 빼두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이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 할머니는 수십 년 전 대학병원에서 특정 부위의 암을 진단받고 진단받은 부위만 수술하려고 했지만 검사 중 다른 쪽에도 암이 발견됐다고 해서 가족들이 다른 부위까지 수술을 하자고 이야기를 했고 수술을 그렇게 진행했다고 했다. 그렇게 진행을 하고 나중에서야 어떤 이유로 몸의 반이 마비가 되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안타깝다고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들을 얼마나 원망하겠냐는 말도 하면서 대뜸 아빠 이야기를 했다.


그 집 딸이 엄마 앞에서 자꾸 요양병원 보낸다고 반 협박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할머니의 딸은 엄마를 좋게 봐줘서 친해졌다고 했는데 엄마는 그렇게 말하는 그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보호센터에서 일을 해봤고 요양병원에서 직접 몇 년 동안 어르신들을 케어해 본 이력이 있어서 그런 걸까. 어르신 앞에서 그런 말씀하면 속상해하신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괜히 울컥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더 집중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배우자를 잃기 전까지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장례 이야기니 사후 처리에 관한 이야기를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어요. 지금 와서 너무 후회스러워요"라는 말.


역설적이지만 엄마가 참 기특하다. 내가 20대 군대를 전역하고 남들처럼 제대로 된 사회생활, 회사생활을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도전하고 실패하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집에서 집안일만 하니까 집 밖의 세상은 하나도 모를 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치부했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고 정말 대견하기도 했다. 엄마가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서 더 뿌듯했을까?


지금은 내가 돈벌이를 못하고 있고 얹혀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엄마가 죽기 전에 제대로 된 효도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싶다. 일단 나의 첫 번째 목숨은 4월 중순에 끝날 예정이긴 하다. 그 이후에 두 번째가 될지 첫 번째의 마지막의 마지막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막 생각난 건데 엄마는 나에게 몸에 좋은 것을 먹지 않고 맨날 술에 라면만 먹으니 문제가 되고 아직 젊으니까 그렇게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거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당장 일하다가 고층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고 비명횡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라고 뭐 100살까지 살다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적당히 좋아하는 거 즐기면서 살다가 죽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아직 어려서, 아직까지도 젊어서 저런 생각을 한다는 말을 했다.


엄마. 미안한데 나 건강하지 않아. 간 수치만 보면 기절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그냥 좋아하는 거 하다가 죽게 놔줘. 망나니처럼 살고 있다고 했지만 망나니면 어때 좋아하는 거 좋아하다 죽는 게 망나니는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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