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적인 논문을 본 것도 아니고 유명한 의사가 한 말도 아니다. 그저 지나가다 정신과에 다니던 사람이 평소 상담할 때는 의사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다가 환자분이 씻는 게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니 심드렁 한 의사 선생님이 의자를 고쳐 앉고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씻는 게 힘들고 귀찮아진다는 게 우울증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라고 궁금해했다. 우울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나로서는 쉽사리 지나칠 수 있는 글이 아니어서 글을 차근차근 읽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이건 누군가가 오피셜로 적어둔 것도 아니고 그저 집단지성에 의한 글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해당 글에 달려있는 글은 나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나는 요즘 수면 패턴도 엉망이 되어버렸고 식욕도 사라졌다. 사실 정확히는 사라졌다기보다는 일부러라도 먹지 않는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겨우 두 끼를 먹기는 하지만 아예 안 먹을 수도 있기도 하고 하루에 한 끼 먹고 연명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하루에 대충 라면이라도 끓여 먹거나 저녁에 밥을 먹기도 하지만 그렇게 먹는 것도 내 의지는 아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도 않고 그냥 누워서 잠만 자고 싶다. 어디를 나가고 싶은 마음도 들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도 슬슬 씻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딘가를 나가기 위해서는 꼭 샤워를 하고 나가는데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어딘가를 나가야 한다고 하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갈아입을 옷들을 정하고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온수를 틀어두고 물이 뜨거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뜨거운 물이 나오면 그제야 몸을 녹이고 그 이후에 머리를 먼저 감고 폼클렌징으로 얼굴을 닦고 바디워시로 마무리를 하고 양치까지 한다.
그 과정이 이렇게 글로 나열하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나에게는 이따금씩 힘든 일이 되고 있다. 약속이 없는 날이면 억지로라도 나가서 사진이라도 찍고 어딘가라도 나가서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을 하지만 며칠간의 나의 모습은 그렇게 나가려고 오후 늦게 일어나는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은 맞추어 두고 실제로 그 시간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시간에 일어나서 하는 일이라곤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다시 소파에 앉아서 소화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슬슬 소화가 되는 느낌이 들면 소파에 누워서 잠을 청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자고 싶지 않았고 밥을 먹었으면 제대로 씻고 어디론가 나가서 사진을 몇 장이라도 찍고 오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밥을 다 먹은 이후에는 정말로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고 씻으려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았다.
씻고 준비하고 나가려는 모든 과정들이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힘들게까지 느껴지지 않았는데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오는 순간까지, 머리를 말리고 외출을 위해 옷을 입고 나가는 과정까지가 너무 힘들어졌다. 요즘 누군가를 만나려고 옷을 준비해서 입고 나가려고 하면 마음에 들지 않은 스타일밖에 눈에 보이질 않아서 방에서 옷을 3-4번이나 갈아입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렇게 하다 보니 집 밖을 나서기 전까지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나고 그제야 부랴부랴 집 밖을 나서곤 한다.
과연 나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정말 우울증의 중증 현상이 나에게 찾아온 걸까 싶다. 지금은 당장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모아둔 돈을 아끼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것에 대해 돈을 아끼지 말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아끼던 돈을 왜 아끼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냐면 난 이대로 살다가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감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술을 사고 편의점에서 만원 이만 원 쓰는 것도 아깝지 않다. 매일 그렇게 쓰면 부담스럽겠지만 조금은 덜 불안하다. 카메라를 제외해 놓고서도 이제는 600만 원이라는 돈을 모았다. 이 카메라가 당장 고장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장의 삶을 몇 개월이나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은 된다.
저 돈이 30대 중반이 모은 전재산이라는 게 역설이고 웃긴 일이긴 하지만 난 이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1억이라는 돈은 모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천만 원도 아니고 고작 600만 원밖에 모으지 못한 내가 한심스럽다. 그리고 힘도 열정도 없이 늙어가는 노인네가 되어간다니 진짜 혐오스럽다 나 자신이.
이렇게 늙어가서는 원하는 카메라도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죽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