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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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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계획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마지막으로 정해져 있는 4월이라는 시간이 오기 전에 어디라도 떠나려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결정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철저히 내 기준이지만 이렇게 빠르게 고민을 하고 결정하고 행동했던 적은 없었다. 중고로 물건을 사려고 해도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넘게 고민을 하고 계속해서 찾아보고 이걸 사도 괜찮은지 나에게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혼자 여행을 다녔던 적이 있었나 싶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싫어하고 혐오하기 때문에 나에게 돈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저 아깝다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막상 이렇게 기차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예약하면서 하나씩 나아간다는 느낌이 드는 건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느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나 자신에게 썼던 돈 중에 가장 큰 금액이다. 다들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여행을 다니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가지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나는 왜 그런 욕구가 없을까? 고민스러웠던 날들도 많았다. 심지어 정신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문제가 있다고 했으니 그 문제가 왜 생긴 건지도 궁금했다. 정말 돈이 없어서 욕구조차 사라질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구가 생기지 않는 걸까?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는 못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가방을 꾸리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아직까지 해가 지고 난 이후의 시간은 아직까지도 쌀쌀하고 서늘한 수준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춥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시기가 아니라 조금 더 지나서 가야 할까? 날이 조금 더 풀리면 가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냥 지금 예정대로 출발하고 겨울 옷을 좀 싸갈까?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지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평생을 시간낭비해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객관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놀랍다. 내 입으로 성숙했다고, 조금 더 어른스러워졌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 과일 함유량 정도는 어른스러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생활에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고 바뀌어 가고 있다. 엄마는 다른 공부를 하고 일을 더 늘려서 일주일 내내 오전 오후까지 일을 늘렸고 가족을 압박하는 돈은 점점 압박해오고 있다. 나도 사진이라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일단 어디든 나가려는 모습이 보이는 걸 보면 어느 정도 나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 방법은 누구라도 쉬운 방법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렇게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내가 찍어온 사진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사진에 관해,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나에게 있어서 아니 내가 살아온 삶에 있어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과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고 나를 조금 더 어른스럽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아직까지도 아주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느새 아주 조그만 불빛들이 새어 나오는 느낌이다. 물론 그렇다가도 다시금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을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지만 이전에는 아주 일어나는 방법을 몰랐다면 이제는 일어나려는 방법과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는 걷지 못해도 내 두 발로 일어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희망이라고 하면 희망일 테고 남들에게는 당연한 행동이라면 당연한 행동일 수 있겠다.


누구보다도 느리고 굼뜨지만 뭔가 하나씩 진행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래서 오래 살고 봐야 한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썩 불안하기도 하지만 나쁘지도 않다. 항상 이타적으로 살아온 내 인생은 쉽게 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집이 아닌 곳에서는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다.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것이 돈벌이도 못하고 나잇값도 못하는 나지만 그냥 느림을 인정하고 천천히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이 들 뿐이다.


물론 돈에 허덕이는 엄마를 도울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에게 남은 집 한 채의 관리비조차 도울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어떻게라도 도움이 될 일을 알아봐야겠다. 그저 돈 낭비를 하면서 흥청망청 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랄까. 괜히 싱숭생숭하다. 괜히 또 밤바다를 보고 울컥해져서 해변가에서 혼자 깡소주를 까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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