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한 순간에 술을 끊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술을 더 많이 마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버린 듯하다. 아무리 가족들이 술을 먹지 마라, 술 마셔도 좋지만 혼자 마시는 건 절대 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들을 때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저 나 자신을 억압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술을 엄청나게 마셔댔다.
하루는 밤을 꼴딱 새우고 오전부터 술을 마시기도 했고 새벽 내내 고파진 배를 달래려고 밥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정도였다. 라면을 끓여서 술을 마시다가도 그렇게 잠에 들기도 했고 정말 생각해 보면 안하무인처럼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술을 마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 아빠의 죽음 때문에 충격과 스트레스로 마시게 되었다고 상담을 받을 때마다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을 다시 해보자면 그것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영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온전히 아빠의 죽음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이후로 친척들과의 싸움, 절연, 그것들을 혼자 처리했던 때의 외로움 등 모든 것들이 결합되어 술이라는 결론에 도착했다고 한다면 그게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아빠의 죽음이란 내용으로 글을 한동안 많이 써서 이 이상 글을 쓰는 것이 의미는 없겠지만 그때 장남이라는 이유로 장례식과 그 이후의 절차들을 남자인 내가 했었어야만 했고 심지어는 아빠에게 일감을 주던 대표님의 회사에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자존심이 굽혀지기도 했었다. 사회와 회사라는 것이 모두 다 그러하듯이 이익이 없으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아빠의 죽음 이후 이렇다 할 지원이나 연락이 오지도 않았고 매 해 겪는 아빠의 기일에 연락 오는 사람이라고는 장례도우미라고 해야 할까 수의부터 그런 것들을 담당하는 담당자님에게만 매년 문자로 연락이 올뿐이다.
그렇게 술을 찾게 되었고 술이 없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더랬다. 어느샌가 술이 나를 집어삼키는 느낌이 들어서 그 느낌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져서 게다가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다 보니 공포와 불안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술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고 치료나 상담을 한 번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병원들을 찾아갔고 상담을 받고 치료를 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간 알코올 중독 전문 치료 병원에서는 30분 정도를 상담하고 약을 처방받았는데 일주일을 약을 꾸준히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을 먹으면서 술을 먹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받아온 약들을 검색해 보니 제대로 된 '중독 치료', '알코올 분해' 등의 이름이 붙어있는 약은 없었다.
아마 초진이라 약을 조절해서 처방해 준 것 같았는데 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먹어본 뒤 효과가 정말 1도 없다고 느끼면 다시는 그 병원을 가지 않는다. 아주 약간이라도 술 생각이 나지 않았더라면, 그 약으로 인해 술을 하루라도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 병원이 멀더라도 꾸준히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나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초진이고 처음 병원에 내원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강한 약을 쓸 수 없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그냥저냥 그 병원은 물 흐르듯 지나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병원들을 다니고 상담을 받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해결하고 싶어 했던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 법'에 대해서는 상담도 치료도 와닿지가 않았다. 상담 자체도 나 자신과 내 생활방식에 대한 상담만이 이루어졌고 침을 맞아도 근본적으로 술을 먹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나 그렇게 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정말 술을 멀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이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조금이나마 떨어질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도 신기했고 억지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나를 존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부분도 너무 기쁘고 낯설게만 다가왔다. 반 평생 술을 끊지 못해서 그렇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져만 갔던 내가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까지도 완벽히 술을 끊은 것은 아니지만 2주 정도 마시는 술의 양을 굉장히 많이 줄이게 됐다. 평소에는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다가 정말 지쳐 침대에 쓰러져 자는 순간까지 마셔댔는데 그 양이 페트병으로 2-3개 정도는 됐다. 거의 매일 1L 정도의 술을 마셨다는 뜻인데 그랬던 내가 이제는 한 병을 다 마시기도 전에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생각이 들면 양치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는 사실이다.
완벽하게 술을 끊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어느 정도 마시다가 적당히 먹고 적당히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점점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술이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하루가 되어가고 있다.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는 너무 행복하지만 이제는 혼자 마시는 술의 양을 조금 더 많이 줄이고 함께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벌써부터 감히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무나도 하루하루가 벅차다. 매일 여행 가기 전날 밤처럼 설레고 떨리는 하루하루가 되어버렸다. 항상 죽고 싶단 이야기만 하고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내가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고 인생을 정말 새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