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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줄여나가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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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줄이고 있다. 한창 마셨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극단적으로 술 양이 줄었다. 640ml 페트병을 두 개, 두 개 반을 먹던 내가 페트병 하나를 다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그렇게 마시는 양이 줄었다고 해도 슬프거나 짜증 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술을 줄이고 내 손으로 조절할 수 있음에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라도 술을 줄였음에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술을 내 손으로 조절해서 마시는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지금 그렇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건 완벽한 금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완벽한 금주를 원하지는 않는다. 내가 원할 때 먹고 원하지 않을 때 내 손으로 술을 조절해서 먹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요즘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 내 손으로 술을 마시기도 하면서 내 손으로 술을 그만 마시기도 한다. 어느 정도 먹다가 이전과 다르게 취기가 올라오면 그만 마시기도 하고 그냥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무리해서 마시지 않는다. 최근에 마시는 속도와 양 모두 줄었다.


정확히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술잔은 일본 여행을 하면서 사온 이 잔으로 먹고 있는데 이전에는 넘칠 정도로 소주를 부어서 찰랑찰랑한 잔에 입을 가져다 대서 원샷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먹지도 않는다. 가득 따르지만 두 번에 나누어 마신다. 그렇게 마시다 보니 먹는 속도도 현저히 줄었고 마시는 양도 줄었다. 그렇게 천천히 느긋히 먹다 보니 더 오래 마시기도 힘들고 더 많이 마시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술을 줄이게 되었는데 그래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이렇게라도 줄여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줄였지만 이렇게 매일 조금이나마 마시는 걸 탓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라도 마시는 게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다. 마시지 않을 거면 아예 마시지 않고 다음 날이나 다음에 마시게 될 날에 마시면 되는 일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도 참 짜증 나는 것 같다. 나는 왜 아직까지도 술을 완벽히 조절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몹쓸 생각이 든다.


간 약으로 처방받아온 고덱스도 다 먹어서 이제 슬슬 피검사를 하면서 겸사겸사 건강검진도 받을 수 있다면 받아봐야 할 텐데 간수치가 어떻게 되었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면서 불안하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술을 줄이긴 했지만 결국 지속적으로 조금씩 계속 마시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간수치가 줄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기쁜 소식은 금단 증세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창 페트병 두 개씩 마실 때는 지하철이나 버스의 손잡이를 잡으려고 중력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을 때 반발심으로 손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그래서 대중교통에서 남들이 내 손 떠는 모습을 볼까 봐 중력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젓가락질을 하면서 작은 땅콩이나 반찬 등을 집어야 할 때 손 자체가 부들부들 떨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는 없고 크게 나타나지도 않는다. 카메라를 들었을 때도 한 때 손이 부들부들거리면서 떨리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그러니까 지금 술을 조절하면서 금단증상도 많이 사라졌다는 뜻인데 그런 것만 본다면 이렇게라도 줄인 것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뜻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조절하면서 마시는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조금이나마 마음 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극한으로 내몰며 채찍질을 하고 술을 마시지 말라고 벼랑 끝으로 내몰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방식이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런 마음을 들게 한 사람을 이제야 만났기 때문에 술도 적당히 마시면서 즐기고 싶고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내려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새벽 늦게까지 깨어있는 것도 이제는 하고 싶지 않다.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몸이 하나 둘 아픈 증세가 나타나는 것도 술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들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막막하다.


주변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건 내 성에 차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내 손으로 조절하고 싶다. 주변에서 누가 하지 말라고 극단적으로 말리면 오히려 더 하고 싶은 반발심이 생겨날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라도 노력하는 걸 받아들이고 조금이나마 나를 놔주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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