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서른 한살이나 되었으면 이제 어느 정도는 느낄 것 다 느꼈고, 할만한 것들 다 해봤고 데일만큼 데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사는 삶이 이 이상 더 나아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겪어왔던 나의 삶은 누구보다도 평범했고 누구보다도 외롭고 지독한 세월을 보내왔다. 내 인생을 터널이라고 비유한 것도 같은 이치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한창 힘들었을 때, 정말 죽기 직전의 상황에는 나의 방 문을 여는 것조차 힘들었고 누군가가 영원히 불러주지 않았으면 했다. 밥을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 나와서 이것 좀 해달라는 말, 일단 이리 와보라고 불러보는 아빠의 목소리 등 나는 아마 간섭받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싫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매일은 지옥 같았다. 나를 챙겨주는 것은 오로지 엄마와 아빠뿐이었다. 그마저도 챙겨주는 것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나를 구속하고 억압하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네가 혼자 뭘 할 줄 알아, 밥도 혼자 못 차려먹으면서"라는 말로 나를 점점 옥죄기 시작했고 그것이 불똥이 되어 나는 독립을 결심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다. 집에서 떨어져 나와 외롭고 서럽지만 혼자 산다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정신적으로든 심적으로든 도움이 무조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두 가지가 아니라 현실적인 월세, 공과금, 생활비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일을 해야만 어떻게든 유지가 될 수 있었고 그렇지 않다면 당장이라도 보증금을 전부 까먹을 수 있다는 압박감에 밤에 잠도 못 잤었던 것 같다. 늘 월세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 압박감.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집 우편함에 꽂혀있는 그 종이가 왜 그렇게 무섭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사실 아직까지도 날아오는 것들이 많이 있고 처리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집이 잘 살았더라면 보증금이나 전세 비용이라도 대주면서 떵떵거리면서 아들한테 체면 세우고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의 독립은 오롯이 나의 결정이었지만 그 결정에 어찌 됐던 힘을 실어줬던 것은 엄마였다. 엄마 덕분에 보증금을 조금이라도 더 빌려서 혼자 나와서 살 수 있는 집을 구했고 도움을 조금씩이나마 받아서 어찌어찌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배가 고파도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대충 술이나 두 세병 먹고 약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식욕이 사라지곤 한다. 먹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확히는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있으면 먹고 없으면 대충 아무거나 입에 쑤셔 넣고 끝낸다. 그게 정확한 것 같다. 나는 회사에서 즐겨먹는 음식으로는 삼각김밥이 있는데 나에게 이만한 특식도 없다. 어느샌가 점심시간에는 꼭 먹었던 컵라면이 사라지고 삼각김밥과 가능하다면 탄산음료, 에너지 드링크와 함께 먹곤 한다. 컵라면은 왜인지 몰라도 국물까지 다 먹는 습관이 있어서 조금 더 살이 찔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먹을 때마다 국물을 다 먹곤 한다. 억지로 절제시키는 것 같은 느낌인데 잘은 모르겠다.
먹는 것에도 딱히 관심이 없고 음식을 골라야 할 때도 심드렁하다. 아무거나 먹었으면 좋겠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도 사실 없고 글 쓰는 것 이외에는 정말 딱히 없는 것 같다. 좋아한다기보다는 글 쓰는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 머리를 비우는 행위가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이 성격이 정말 잘 나타나는 내 성격이 뭐냐면 나는 선물을 받더라도 사라지는 것을 싫어한다. 예를 들면 생일 선물이나 기념일 선물, 혹은 지인에게 받는 선물이 음식이라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다거나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다면 물리적인 것으로 받고 싶다. 내 손 안에서 내가 살아있을 때 까지라도 혹은 내가 그 선물을 잃어버리는 날이 오더라도 손에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사람도 그렇고 물건도 그렇고 사라진다는 느낌이 너무 싫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선물로 받는다고 하면 그것이 싫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나는 손에 남아있는 선물이 받고 싶을 뿐이다.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준 것을 항상 기억할 수 있고 무언가 내 손에 있는 물건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의 감정이나 그때 느꼈던 모든 것을 다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선물을 줬던 장소, 선물을 했던 시간, 선물을 받으면서 봤던 노을, 선물을 받으면서 함께 들은 말, 선물을 받을 때 우리가 입고 있던 옷, 가방, 그 외의 수많은 감정들. 그런 것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유지'하고 싶다. 기억하고 싶다.
그렇게 어질고 모자라고 복잡한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되어주었다. 가는 곳마다 관심과 걱정이 주를 이루었고 늘 감사하다는 말과 든든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이제는 익숙해지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것조차 놀랍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영향력을 서로에게 전파하고 다니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고 그것이 돌아가는 원동력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 힘이 되어주고 의지가 되어준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지가 된다.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나의 모든 상황에 감사하다.
코로나에 걸렸다고 회사에서 따돌림 비슷한 것을 당했었고 코로나에 걸려서 스케줄이 기존보다 훨씬 더 힘들어졌고 같이 일했던 직원들의 가족들은 나를 고소하겠다며 나의 상사에게 전화를 했다고도 한다. 그러고선 너 때문에 엄청 힘들게 개고생 했는데 코로나 걸려서 미안하다는 연락을 하긴 했냐고. 그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나랑 동선이 겹치는 것이 싫었는지 사람들은 다 나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나의 업무마저 본인들이 하겠다고 본인들끼리 뭉쳐 다니는 꼴이 그렇게도 우스울 수 없었다. 사실 이제 와서 고백하는 거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좀 더 봐주세요 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 도움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았고 간식이라도 뒤늦게 사들고 다 같이 좀 드세요-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저는 이제 당신에게 기대하지 않아요. 업무적으로는 마주칠 수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솔직하게 들어요."라는 말을 했었다. 그것도 면전 앞에서 너무나도 당당히 팔짱을 끼고 귀찮은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그런 사회에서 짧게나마 버텼지만 열댓 명이 있는 공간에서 나 혼자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요청했고 그 상사조차도 월세를 내야 하니 한 달이라는 시간을 더 줄 테니 생각해보고 월세도 벌어가라-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월세는커녕 한 시간도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나를 피해 끼리끼리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고된 시간들이었다. 오죽했으면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더 평화로웠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만두고 새로운 곳에 오게 되었다. 처음은 누구보다도 멍청했고 미약했다. 아니, 지금까지도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무너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함께 하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줄이야. 나는 사람을 싫어했는데 그런 내가 이런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이야기를 하고 함께 웃고 나를 배척하지 않고 배려해준다는 느낌을 받고 나도 마음을 조금씩 열리는 것이 정말로. 정말 우습기만 하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시련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사람을 너무 잘 믿고 좋은 사람을 기똥차게 잘 알아보지만 너무 사람을 쉽게 믿어 상처받았던 과거들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 매개체가 돈이 아니라 사람 간의 믿음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환영하고 싶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모두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