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수면은 역시

by empty

나에게 수면은 정말 없어도 될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너무나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삶에서 양질의 수면을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에 수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정도까지 왔다면 더욱더.


요즘은 약을 달고 산다. 수면제는 처방받지 못했지만 그와 비슷한 효능을 내는 수면 유도제를 각각의 약국에서 하나씩 가져오곤 한다. 상담을 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았을 때는 하나같이 의사들이 하는 말은 "증상이 별로 세지 않아서 약을 덜 처방해드려도 될 것 같아요. 여기 오시는 환자분들에 비하면 선생님은 가벼운 정도예요"라는 말을 듣고 난 이후로 공식적인 정신병원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음에도 그곳이 온전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정신건강센터라는 곳에 완공이 되기도 전부터 다녔지만 내가 처음 간 날엔 환자 등록을 하고 이런저런 절차들을 밟으며 기다렸는데 그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알고 보니 내가 처음으로 들어간 그 방의 선생님은 이 병원으로 처음 발령을 받은 선생님이었다. 그러니까, 경력이 많은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인턴 개념의 기본적인 절차만을 모두 완료하고 대한민국 사회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갓 사회에 내딛는 사회 초년생 같은 느낌이었다.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하고 이제야 제대로 된 업무를 하고자 사회에 나타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의 첫 병원 전담의가 되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오랜 시간 대기를 하고 상담을 하러 들어갔는데 어딘가 정리된 모습이 하나도 아니었다. 상담실도, 사무실도, 의사 가운의 옷태와 머리스타일, 눈빛 등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그런 사람에게 상담을 받는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때는 어렸을 때니까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상담 차례가 되어서 상담을 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서 결국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이곳에 오신 분들과 비교했을 때는 경증이네요. 금방 나아질 거예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나는 더욱더 무너졌다.


'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감정적으로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 거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행하기엔 너무나도 잘못된 방법이 아니었던 건가 모든 사람이 나처럼 이렇게 되는 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이렇게 하는 거고 중증인 사람은 삶을 포기하는 선택지만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은 도대체 뭐지? 하는 생각에 상담이 끝나고 난 뒤 처방전을 받고 계산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 반대쪽에 있던 간호사 리셉션에 찾아가서 저 의사가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다른 의사를 알아봐 주시고 스케줄 조정을 해달라-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뜬금 엄마 또래의 간호사가 오더니 하는 말 "저 선생님 경력도 괜찮고 학벌도 괜찮고 상담도 잘한다고 소문났대요 그 선생님한테 받으시는 게 제일 좋을 거예요~"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 말투는 바꾸어주기 귀찮으니 저 선생님이랑 해라-라는 말투였다. 얼굴 표정도, 말투도, 대화의 온도도 모두 그것을 가리켰다. 귀찮다는 감정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싫다는 것을 잘 표출하지 못하는 내가 아니 저 선생님 말고 다른 선생님이 좋을 것 같아요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몇 번 더 해보고 그래도 안 되겠으면 그때 오라는 말이었다. 한 번 처방을 받고 나면 최소 1달, 2-3달에 한 번씩 방문하게 되는데 몇 번이나 받아보라니. 난 그 말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때 이후로 받아온 약을 먹지도 않았고 그쪽으로는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무슨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그곳만큼은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한 번 쓰러진 적이 있었다. 화장실을 가던 도중 정신을 잃고 굳게 닫혀있던 안방의 방문이 열리어서 반대쪽 문을 쾅하고 부딪힐 정도로 정신을 잃고 기절했던 적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아찔하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나에게 맞는 의사를 찾아다니려고 애를 썼지만 유명하다는 동네 의원의 스케줄은 6개월에서 1년까지의 스케줄이 미리 다 정해져 있어서 신규 환자가 진입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리고 초진비도 5-6만 원 이상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에 나는 혼자 끙끙 앓고 살기로 했다.


내가 힘든 것보다 나에게 들어가는 돈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혼자 속으로 앓았다.

평생을, 아니 최소 15년 - 20년 이상을 '돈'이라는 것이 '나'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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