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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라 Jul 15. 2018

여전히 파리의 공동묘지를 배회하고 있었다

film photograph





















아직, 

공동묘지를 떠나지 못했다.















































































































아직 시들지 않은 꽃








두상이 없는 조각상 아래 놓인 하얀 꽃다발

































공동묘지의 관찰자, 검은 고양이







또는 감시자

어쩌면 다른 유령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은 검은 고양이의 터전 인지도 모른다.




































한참 묘지 안을 배회하다가 다시 입구 쪽으로 갔을 때, 한 남자가 우리의 모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두터운 점퍼에 모자를 쓴 그는 우리보다 세네 살 정도 많아 보였는데,  우릴 발견하여 조금 반가운 눈치였다. 

그도 우리처럼 몽마르뜨를 향해 가던 중 이곳에서 길을 잃었다고 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낯선 타국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동지였다.  


근처를 조금 맴돌다 보니 어느새 방향감각을 되찾기 시작했고 길을 찾는 일이 조금씩 수월해져 갔다. 

특히 J는 거침없이 목적지인 몽마르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나보다 훨씬 더 몽마르뜨에 가고 싶어 했던 그녀였다. J의 마음속에는 몽마르뜨에서 꼭 보고 싶은, 명확하고 선명하게 그려지는 어떤 풍경들이 있었다. 그 순간 그녀에겐 오직 그 풍경들만이 눈앞에 펼쳐져있는 듯했다. 그녀는 그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일행이 된 남자는 자잘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별안간 빠르게 멀어져 가는 J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둘이 정말 친구사이가 맞냐"는 농담을 내게 던지기도 하였다.

 





































































몽마르뜨를 향하여


머스타드 색깔의 코트와 부츠를 신은 그녀는 

제 갈 길을 가는 중이었을 테지만

마치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했다
































겨울의 몽마르뜨,

우리가 생각했던 풍경은 아니었지만.

푸른빛을 띠는 여름의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모습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활기를 띤 예술가들의 연주와 붓터치를 보기엔 확실히 적절치 않은 시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과의 인상적인 '마주침'이 있었다.








언덕 근처에서 몇 바퀴 돌아다니다가 혼자 화장실에 갔는데 흑인 남성이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보통 기계가 입구를 지키고 서있기 마련이었는데 그곳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여느 유럽의 공중화장실과 마찬가지로 일정 금액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내가 가진 동전을 세어보니 그 금액보다 조금 모자라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가방을 다 뒤져보아도 입장료만큼의 동전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곤란해하던 내게 그가 손짓했다. 그는 입장료에 조금 못 미치는 동전들을 받아 들고는 어쩔 수 없다는 제스쳐와 함께 씨익, 웃음을 짓고는 나를 안쪽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또 추위에 지친 J와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이 생각난다.

그들은 각각 프랑스인과 미국인으로, 우리가 카페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옆 테이블에 앉았다. 

달리 미술관에 막 다녀온 뒤였기에 달리의 사진과 포스터를 들고 있던 우리에게 미국인이 콧수염에 관한 농담을 하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몸집이 매우 커서 한 번 만나면 잊어버리기 어려운 풍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커다란 미국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다. 그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는데, 고향과 국적을 묻고는 잠시 후 번역기를 켜서 우리의 모국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적지 않은 생애 처음으로 발음해본 낯선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국어는 서툴고 부정확했기에 우리로 하여금 웃음이 터져 나오게 했다. 그러나 그때 우리의 모국어를 따라 말하던 그의 진중한 목소리와 미소 띤 눈빛만큼은 꽤 다정하고 따스했다. 겨울바람에 언 몸을 녹여주었던 카페의 온기와 우리 손에 들려있었던 뜨거운 커피처럼 말이다. 






















달리 미술관 근처, 

파란 줄 위에 선 맨발의 기인(奇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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