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가 싫어서 흙감자가 떠났다

퇴사를 고민할 때 읽은 제너비브 킹스턴의 <마지막 선물>

by 빈정원

사진: Unsplash의 Franco Antonio Giovanella


나는 서비스 기획자 출신 작가지망생이다. 반년 넘게 쉬었더니, 다시 돌아가려 해도 취업이 안 된다. 에라이. 그도 그럴 것이, 경기 침체와 고용난이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다. 퇴사한 전 직장도 참 힘들게 입사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최종 3인에 들기 위해 7명의 인턴이 6개월간 경쟁했고, 그 7명의 인턴에 들기 위해 20명의 부트캠프 수강생이 3개월간 경쟁했다. 게다가 그 부트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과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봐 가며 10:1이 넘는 경쟁률을 통과해야 했다. 그야말로 바늘구멍 같은 확률로 입사한 직장이었다. 인턴 기간에는 보증금 500만 원과 월세를 아끼려고 고시원에서 밤마다 종각역 번화가의 소음을 견뎠고, 누군가 흔적을 남긴 변기 물을 내려가며 버텼다.

힘겨운 경쟁률을 뚫고 ‘겨우’ 입사한 회사는 부푼 기대에 비해 ‘겨우’ 그 정도여서 ‘겨우겨우’ 1년 8개월을 버텼다. 나는 어떤 직장에서든 만족도의 육각형을 따져보곤 한다. 연봉, 복지, 사람, 워라밸, 커리어(배움), 보람. 이 ‘만족의 육각형’은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듯 갈수록 쪼그라져만 갔다.

거울 속의 내 얼굴에도 불만족이 드러나는 건지, 그 시기의 나는 마치 안경 쓴 흙감자 같았다. 게다가 ‘너 알고 보면 멋진 애지’ 하며 누군가 진가를 알아봐 주는 일은 없었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고기와 곁들여 나오는 근사한 매쉬드 포테이토나, 누구나 좋아하는 바삭한 감자튀김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분이 나게 잘 삶아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평범하지만 1인분의 역할을 해내는 감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그저 친절하지만 불운한 다른 감자들과 흙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며 창백하다가 열이 오르다가 독을 품은 싹이 났다가 이내 찌그러지는, 불행한 흙감자 그 자체였다.

그 시기에 읽은 <마지막 선물>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이 책은 시한부로 세상을 떠난 엄마가 딸에게 열아홉 해의 생일 선물과 편지를 남긴 실화를 바탕으로, 그 선물을 받은 딸인 제너비브 킹스턴이 쓴 에세이다. 그의 엄마가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전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생각이 필요해. 우리는 이런 힘을 모두 내면에 지니고 있단다. 우리가 얻는 행복의 원천은 다른 곳이 아닌 자기 내면에 있어야 해.”

이 문장을 앞에 두고,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기억해야 하는 태도로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태도”라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엄마가 딸에게 꼭 전해 주고 싶었던 진심과 지혜가 와닿았다.

누구도 나의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기도, 대신 살아주지도 않는다.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한 이 말은 언뜻 무섭게 들릴지 몰라도 조금 비틀어 생각하면 근사한 변명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든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간편한 변명이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 대신 살아줄 거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감자 바구니를 뛰쳐나왔고, 글 쓰는 감자가 되었다. 언젠가 특이한 감자로 이베이에서 수천 달러에 팔릴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땅에 묻혀서 누군가의 양분이 되는 후보도 강력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