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이완이 그리는 삶의 리듬
가만히 호흡을 바라본다.
들숨과 날숨이 이어지고,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간다.
숨이 들어올 때, 몸은 자연스레 확장된다.
숨이 나갈 때, 몸은 느슨히 수축된다.
생리학적으로 들숨은 교감신경계를 자극한다.
심장이 빨라지고 혈압이 높아지며 몸이 활력을 얻는다.
반대로 날숨은 부교감신경계를 자극해
심장은 느려지고, 몸은 힘을 내려놓으며 이완된다.
나는 한때 심장은 늘 일정한 리듬으로 뛰다가
운동이나 감정 변화처럼 특별한 상황에서만 달라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심장의 리듬은 평상시에도
들숨과 날숨, 호흡 하나하나에 따라 달라지고 있었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참 놀랍고도 신기했다.
즉, 지금 이 순간에도
심장의 리듬은 호흡을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들숨은 에너지를 붙잡는 능동적 확장의 과정,
날숨은 내려놓고 맡기는 수동적 수축의 과정이다.
우리 몸은 호흡을 통해 긴장과 이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단순하고 천부적인 능력을 점점 잊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화가 ‘들숨 즉 능동적 성취의 문화’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성취하고, 확장하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며,
내려놓고 맡기는 ‘날숨, 쉼의 문화’는 종종 수동적이라며 부정적 뉘앙스로 여겨진다.
어쩌면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시지프(Sisyphus)를 떠올리게 한다.
신들의 노여움을 사, 그는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지만
정상에 다다르면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이 무한한 노동을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들숨과 날숨의 균형을 잃어버린 우리의 삶도
시지프의 형벌처럼 끝없는 ‘들숨의 노동’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수동성은 무기력이 아니다.
날숨의 내려놓고, 맡기고, 이완하는 것은
다음 들숨을 위한 준비이자 삶의 균형이다.
날숨의 수동성 속에는 회복과 치유,
그리고 새로운 힘을 길러내는 지혜가 숨어 있다.
날숨을 잃어버린 능동적 삶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쌓아가고 있다.
목과 어깨의 뻣뻣함,
가슴의 답답함,
이것은 날숨의 자연스러운 이완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호흡에 자신을 맡길 때,
우리는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능동성과 수동성이 균형을 이루는 과정을 몸으로 배운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화되는 과정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몸이 이완되는 감각을 온전히 알아차리고,
그 느슨함을 몸에 새겨가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몸은 다시 균형을 찾아간다.
긴장과 이완,
붙잡음과 내려놓음,
확장과 수축,
능동성과 수동성.
호흡은 이 모든 사이클을 잇는 다리다.
지금,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편안히 앉거나 누워 호흡을 바라보자.
먼저 코 속 공간을 느껴본다.
공기가 드나드는 감각에 잠시 머물러본다.
이제 가슴을 바라본다.
숨결에 따라 부풀어 오르고 가라앉는 흐름을 느껴본다.
잘 느껴지지 않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그 느낌에 잠시 머물러본다.
마지막으로
아랫배를 바라본다.
숨결이 닿는 그곳의 움직임을 느끼며 가만히 머물러본다.
이제
코, 가슴, 아랫배 중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에 머물며
숨결과 함께
확장되고 느슨해지는 그 감각을 따라가 본다.
숨을 내쉴 때는 입으로 ‘후―’ 하고 내쉬어도 좋다.
자연스러운 한숨처럼 내쉴 때,
몸은 부교감신경계가 더 크게 활성화되며
더 깊은 이완을 경험한다.
가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쉰다.
그것은 몸이 스스로 긴장을 풀고자 보내는 신호다.
그리고
손을 가슴이나 아랫배에 올려놓으면
확장과 수축, 능동성과 수동성의 리듬을
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호흡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몸이 균형을 되찾아가며,
우리는 비로소 ‘느슨하고 고요해지는’ 그 감각에 잠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