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받아들임의 미학

by 텅빈글방

타라 브랙의 『받아들임』에서

“강렬한 출산의 순간에 나는 고통과 대립하며 완전히 교전 중이었다. 두려움과 저항으로 고통에 반응하는 것을 많이 봐온 산파는 즉각 나를 안심시켰다.

‘잘못된 건 없어요... 모든 게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단지 고통스러울 뿐이에요.’

그녀는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번 그 말을 반복했고, 타는 듯한 고통, 폭발할 것 같은 압력, 찢김과 탈진 속에서 나는 다시 호흡하고 긴장을 푸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단지 고통일 뿐,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을 열고 그것을 수용할 수 있었다.”


삶이란, 고통을 느끼는 것을 포함한다.

나에게도 몸의 불편감은 오래된 친구처럼 익숙하다.

이 친구를 없애기 위해 오랫동안 애쓰며 싸워왔고, 통증이 줄어들면 안도하고 기뻤다가 다시 심해지면 좌절과 우울이 따라왔다.

언제쯤 이 싸움이 끝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반복하곤 했다.


위의 구절을 떠올리며 내 몸을 바라본다.

내게 찾아오는 다양한 불편한 감각들 — 아리고 쓰라리고, 욱신거리고 조이며, 당기고 저리고 따끔거리는 — 이런 감각들이 순간순간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불쑥 ‘뭔가 잘못된 거야’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몸에 힘이 들어가고, 감각을 없애려는 전투가 시작된다.

다시 호흡을 의식하며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고, 내쉴 때마다 힘이 풀리도록 스스로 허용해 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해본다.

잘못된 건 없어.”

나는 이런 불편한 감각들을 무의식적으로 ‘나를 해치는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더 막으려 하고,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게 정말 진실일까?

통증은 몸의 이상을 알리는 경고 신호라고 한다.

한편으론 몸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란 말도 있다.

또 심신 치유 관점에서는, 억눌러온 감정들이 몸을 통해 표현되며 우리에게 ‘나를 봐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하기도 한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어떤 해석이 맞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또 다른 가능성도 있는 걸까?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아는 ‘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당연함’에 질문을 던질 수는 없을까?


지금 이 불편한 감각을

‘진짜 적’이라고 확신해도 괜찮은 걸까?


에크하르트 톨레는 지금에 현존하기 위해

내면으로 질문하라고 얘기한다.

‘지금,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불편한 감각이 심해질 때나,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불쑥 “이건 나를 해치는 거야”라는 반응이 떠오른다.

그 순간 불안과 긴장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럴 때 나는 내면에 조용히 묻는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숨을 길게 내쉬면서 긴장을 풀어본다.


이 감각을 ‘적’으로 판단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면

싸움은 조금씩 멈춰지고, 긴장으로 좁아졌던 주의는 조금씩 넓어지고 열린다.


그 넓은 공간 속에서 다양한 감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져 간다.

감각은 지속되기도 하고, 스쳐가기도 하며, 계속해서 변한다.

그 감각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미세한 긴장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도 본다.


그러다 또다시 무력감, 불안, 좌절 같은 감정들이 다시 올라오기도 한다.

무언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런 흐름을 느끼며 질문한다.

정해진 해석이나 지식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생명 현상 그 자체’를,

그저 있는 그대로 느낄 수는 없을까?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나는 기도하듯 바란다.

내 안의 살아 있는 생명이,

그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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