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것은 없어, 이것이 삶이야
타라 브랙의 『받아들임』을 읽으며 내 마음에 깊이 내려앉은 문장이 있다.
“그 무엇도 잘못된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처음엔 그저 '좋은 말이네' 하고 지나쳤지만,
어느 새벽 조용한 시간에 다시 읽었을 때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 말이 내 마음에 마치 마법 같은 주문처럼 들어와서, 삶의 여러 순간마다 나 자신에게 속삭이듯 되뇌게 되었다.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일흔이 가까운 명상가 제이콥은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었다.
가끔은 머리가 멍해지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방향 감각을 잃기도 했다.
음식을 먹거나 옷을 입고 걷는 것처럼 기본적인 일에도 도움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 흥미로워하고, 슬퍼하고, 감사해했고, 심지어 쾌활하기까지 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무엇도 잘못된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모든 것에 슬픔과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지만, 진짜 삶으로 느껴요.”
한 번은 그가 명상 강연을 하러 단상에 올라섰는데,
그 순간 알츠하이머 증상이 찾아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왜 거기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음이 몹시 혼란스럽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들을 하나씩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두려움, 당황스러움, 혼란스러움, 실패자라는 느낌, 무력감, 떨림, 죽어가는 느낌, 기운 없음, 길을 잃은 느낌...”
몇 분 동안 그 상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이 이완되고, 고요해졌을 때 그 역시 소리 내어 표현했다.
그러고 나서 청중들을 둘러보고 조용히 사과했다.
청중 중 몇몇은 울고 있었고,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누구도 지금껏 이처럼 우리를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가장 심오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일화가 마음에 깊게 남는다.
자신의 취약함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는 건, 진실로 용기 있는 일이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취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진짜 만남이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나 역시 “잘못된 것은 없어, 이것이 삶이야”라는 문장이 자주 생각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의 일이다.
아파트에 물건을 배송하던 중, 엘리베이터에 엄마와 어린 딸이 함께 탔다.
나는 급한 마음에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를 두 번 멈춰 물건을 배송했다.
그 어머니는 공용 엘리베이터인데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니라며, 나중에 물건을 배송하는 게 맞지 않냐고 말했다.
나는 나대로 일이 밀리면 너무 늦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분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잘못한 건 나라고 말하며 내려갔다.
내릴 때, 그분의 어린 딸이 조용히 배꼽 인사를 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마음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그저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고,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에게 계속 확인하려 들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엔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하는 불안과 스스로를 탓하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잘못된 건 없어. 이것도 삶이야.”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변명처럼 떠오르던 생각들이 조금씩 잦아들고,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 어머니의 표정이 떠올랐다.
조금 어둡고,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뭔가 급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내가 너무 피곤했고, 빨리 끝내고 싶었고, 말 한마디 더 할 힘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분도 무언가 여유가 없었을 수 있고, 아이 때문에 서둘렀을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선 누구도 딱 잘못했다고 말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내 사정만 이야기하기 전에
“죄송합니다, 양해를 구하지 못했네요”라고 먼저 말할 수도 있었겠지.
그 일을 돌아보며 느낀 건,
내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을 때 그 밑바닥에는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있다는 거였다.
그 불안 때문에 나는 종종 나 자신을 자책하거나,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는 생각에 빠져든다.
그럴 때,
“잘못된 것은 없어, 이것도 삶이야”라고 말해보면,
그 생각에서 조금은 빠져나오게 된다.
그러면 나 자신도 좀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고,
상대의 마음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자주 판단한다.
엄마가 젊었을 때 있었던 일을 꺼낼 때,
왜 그렇게 과거 이야기를 반복할까 싶을 때도 있고,
친구가 내 생각과 다른 얘기를 할 때 “저건 아닌데…”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린다.
“잘못된 것은 없어, 그저 삶일 뿐이야.”
그 문장을 떠올리는 순간, 내 마음은 조금 여유로워지고,
그 사람의 마음도 조금 더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단순한 말이 내 마음을 열고,
나와 타인의 진짜 얼굴을 보게 해 준다.
이 문장은 나를 판단의 세계에서
나와 상대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마법 같은 주문이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감정이 어지러울 때면
습관처럼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올라온다.
그럴 때 이 말을 되뇐다.
“잘못된 건 없어. 단지 지금 화가 날 뿐이야.”
“잘못된 건 없어. 단지 무기력할 뿐이야.”
“이게 진짜 삶이야.”
그렇게 마음을 이름 붙이고 받아들일 때,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감정들이 조금은 숨을 쉬기 시작한다.
이 마법의 주문은 나에게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머무르며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짜 삶이, 천천히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