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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20 [,]

비워야 채우지

by 여백


2024년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사람이 목표가 있고, 심지어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면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너그러워지기 어려운 것 같았다.


남자친구의 행동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난 누군가를 만나면서 상대방이 나의 말을 기억하지 못해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기에,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줄은 전혀 몰랐다.


당시 수업 나눔 강의가 평일이었다가 선생님들의 요청으로 주말로 변경되었다.

나는 장학사에게 받은 카톡을 그대로 남자친구에게 전달했고, 그 날짜와 AI자격증 시험 날짜가 겹쳐 문제라는 이야기까지 했었다.


"오늘 강의하는 날이네?"


당황스러웠다. 변경되기 전의 날짜에 뜬금없이 카톡이 왔다.

"내가 날짜 바뀌었다고 말했잖아?"

"아 그랬나?"

"내가 카톡으로 메시지 전체를 다 보내줬었는데..."


그때의 그 강의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고, 첫 외부 강의였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친구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그런데 저런 식의 '잊음'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이 문제였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인터넷 창에 검색을 해봤다.


'남편이 지적 장애가 있는 것 같아요'

'자꾸 까먹는 남편 때문에 화병으로 쓰러질 것 같아요'

'남편한테 ADHD 검사받아보라고 했어요'


상당히 많은 여자들이 남편의 '잊음'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 알게 된 나는 러키 비키였던 걸까...?

카톡 공지사항에 서로의 일정을 적어놔도, 캘린더에 체크해 놔도, 그는 자꾸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댔다.

너무 화가 났지만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 까기를 했더니 그는 커플용 캘린더 어플을 설치했고 날 초대했다.

조금 나아지나 싶었는데 내가 이 사람을 꼭 만나야 할까 싶을 정도로 나의 일정을 까먹고 또 까먹었다.


이런 단점들이 너무 부각되다 보니 장점이 장점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까지 달려오는 남자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저렇게 하지 않으면 서울 여자를 만날 수 없으니 누구에게나 저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점점 한계치에 다다랐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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