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우지
2024년 3월 말.
처음 그가 나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고백했던 그날 밤,
나에 대한 질문에 그는 분명히 말했다.
"응, 4년 뒤에는 서울로 올라올 수 있어"
"4년? 음.. 그래?"
고백을 받고도 고민이 되었다.
"4년 뒤면 2028년인데, 결혼하면 주말 부부를 해야 하는 거야? 그전에 올라올 순 없어?"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커리어에 큰 영향을 주는 거라 끝내고 이직하는 게 무조건 유리해"
일단 지역 문제는 덮어두었다.
매주 날 만나러 서울까지 달려오는 열정이 있으니 당장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소개팅을 하다 보면 마지막 연애가 언제인지, 가장 오래 만난 사람은 몇 년인지 등 과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실 난 그런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대체 그게 왜 궁금하지?라는 스타일이다.
이 사람도 내 과거에 대해 묻지 않았기에 사귀기 전 이전 연애에 대해 따로 이야기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를 점점 먹다 보니 다른 것보다는 헤어진 이유가 중요했다. 사귀고 며칠 뒤, 궁금한 것을 가감 없이 물었다.
실제로 많은 남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면, 아무렇지 않게 자세히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푸는 경향이 대체로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싸워서 헤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다만, 지역 때문에 항상 헤어졌다고 했다. 경기도 혹은 지방으로 이동하게 될 때마다 장거리를 이겨내지 못했다고 했다. 혹은 한 사람이라도 지역을 포기하지 못하면 추후 결혼에 문제가 되니 그때마다 이별을 선택했던 것이다.
지역.
역시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나를 만날 때도 지역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사귀어 버렸다.
내가 볼 땐 그 사람 입장에서 꽤 단순한 문제로 보였다.
"그럼 그 지역에서 만나면 되는 거 아니야?"
"거긴 너무 좁기도 하고 소문 다 나서 별로야"
4년. 도박을 하는 기분이었다.
난 강원도로 내려갈 생각이 단 1%도 없었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도 싫지만, 무엇보다 지역 이동을 해서까지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얼까?라는 물음표만 떠오를 뿐이었다.
머릿속은 어지럽지만 막상 연애는 즐겁게 했다.
그는 자신이 20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는 나도 크게 동의할 수 있었다.
딱딱하기만 했던 그의 첫인상도 탐탁지 않았고,
세 번째 만남 때 멀리 있던 그를 보자마자
'저 사람이 맞나? 내가 너무 얼굴을 안 봤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적인 부분에서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온 세상을 알록달록한 색으로 예쁘게 붓칠 하는 듯,
나와 그 사람은 아기자기하게 예쁜 만남을 유지했다.
걱정되는 지역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