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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23 [,]

비워야 채우지

by 여백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

내가 이 정도 티 냈으니 알고 있길 바라는 것,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행동해 주길 바라는 것,


지금도 완전히는 버리지 못하는 미성숙한 생각이다.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다짐했다.

"오빠, 나 아침에 눈 감고 가야 해서 출근길에는 통화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아"

"그래? 나도 엄청 노력하는 건데?"

"노력하는 거 알지. 근데 내가 아침에 전화해 주길 바란 적은 없잖아. 통화하는 건 너무 좋은데 아침에는 피곤해서.."


출근길에 통화를 하지 않으니 삶의 질이 높아졌다.

쪽잠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는 상황에서 통화를 해야 하는 나의 입장과,

회사까지 룰루랄라 걸어가며 잠깐 통화하는 그의 입장은 아무래도 많이 달랐다.

솔직히 나는 남자친구가 이기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노력한다고 하니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것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남자친구의 과함은 나를 점점 힘들게 했다.

30대 후반에, 심지어 정신없이 바쁜 상황에서

금, 토, 일 3일 내내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은 체력적으로 너무 버거웠다.

콩깍지와 호르몬으로 이 시기를 버텨내기에는 둘 다 나이가 너무 많았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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