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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 키건의 <맡겨진 소녀>

가장 빛나는 순간

by 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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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 키건의 <맡겨진 소녀>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 이미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맡겨진 소녀>는 키건이 ‘양동이와 그 안의 물에 반사된 소녀의 모습’이라는 이미지‘에서 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아이랜드 교과 과정에도 포함돼 아일랜드에서는 모두가 읽는 소설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작품은 콤 베리어드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돼, 올해 6월에 재개봉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단면으로 날카롭게 잘라내 우리들의 모습을 성찰하게 한다면, <맡겨진 소녀>는 한 소녀의 기억 속 아름다운 사진처럼 남아 있을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소녀의 부모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자식이 여럿이다. 그런데 이번에 엄마가 또 출산을 하게 되면서 소녀는 먼 친척 킨셀라 아주머니에게 맡겨진다. 소녀는 작별 인사도 없이 가 버린 아버지 뒤에 남겨져, 낯선 아주머니와 아저씨와 함께 살게 된다. 소녀는 얼마나 있게 될지 기약도 없이 불안하고 불편하며, 약간은 두려운 남의 집 살이를 시작한다.


소녀는 여러 명의 형제자매 중에 끼어 엄마, 아빠의 관심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낯선 친척집에 맡겨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인사도 없이 자신을 두고 가 버린다. 소녀는 아버지를 뒤따라가며 울지 않는다. 소녀는 다만 불안감과 공포, 두려움을 숨긴 채 부부 앞에서 얌전하게 침묵을 지킬 뿐이다.


‘네가 내 딸이라면 절대 모르는 사람 집에 맡기지 않을 텐데.’


킨셀라 아줌마는 소녀를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킨셀라 아줌마는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먼 친척에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는 자신에게 소녀를 맡긴, 소녀의 부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소녀가 마음이 쓰이고 애틋하다. 소녀는 낯선 환경에 두리번거리지만 킨셀라 아주머니는 소녀를 위해 축축한 매트리스를 햇빛에 말려주고, 소녀를 위해 새 옷을 사 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준다. 부부는 서두르지 않고 소녀에게 책을 읽히고 예절을 가르치며, 소녀가 수증기 가득한 욕실에서 목욕을 하며 행복하게 만든다. 소녀가 가정이라는 편안한 품을 느끼도록 해준다. 소녀는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그들에게 천천히 물들고 있음을.


소녀는 우연히 부부의 상처를 알게 된다. 처음 아줌마네 집에 도착해, 자신이 처음 입었던 헐렁한 옷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가끔 보이는 부부의 슬픈 표정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말이다. 부부가 잃은 아들의 죽음이, 소녀에게 자신의 일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그들의 슬픔은 이미 소녀의 슬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녀는 아저씨에게 자전거를 배우고, 아저씨와 함께 달리기를 한다. 어쩌면 아저씨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했을 일일지 모르지만, 소녀는 아저씨의 진심을 안다. 아저씨의 진심을 느낀다. 그리고 시나브로 아저씨는 소녀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로, 자리 잡는다.


그때쯤 아버지는 잊지 않고 소녀를 데리러 온다. 처음에는 빨리 돌아가고 싶었던 집, 낯설고 불편했던 킨셀라 아줌마네 집은 어느새 소녀의 보금자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안다. 자신은 킨셀라 아줌마네 딸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은 엄마, 아빠의 딸이라는 것을. 하지만 소녀는 잊지 않을 것이다. 아주머니가 만들어주던 빵 속에 담긴 달콤한 사랑을, 아저씨와 숲 속을 함께 달리며 맡던 풀 향과 하늘 냄새를. 소녀는 자신에게 아낌없는 나무가 되어준,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한 곳임을 알려준, 아줌마 아저씨를 잊지 못할 것이다. 소녀가 떠나고 속으로 울고 있을 아줌마와 아저씨 때문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모는 마차 안에서 아버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속으로 울고 있을 소녀 때문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먹먹해지는 사이, 아줌마 아저씨와 함께 보낸 한 여름의 시간은, 소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음을 안다.


영화가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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