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맡겨진 소녀>로 알려진 클레어 키건의 대표작이다. <맡겨진 소녀> 는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을 당시, 국내 문인들과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세상에 나온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클레이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같은 해 오웰상(소설 부문), 케리그룹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이 작품을 가르켜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고 평했다.
이 책은 실제로 아일랜드에 존재했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했던 시설로, 당시 ‘성 윤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여성들을 교화시키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죄 없는 소녀들과 여자들이 그곳에 감금된 채 폭행과 성폭력, 정서적 학대 속에서 노역에 시달렸고 그들의 아기들 또한 방치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무려 70여 년간 자행되어온 잔혹한 인권 유린에 대해 아일랜드 정부는 아무런 사죄의 뜻도 표명하지 않다가 2013년이 되어서야 뒤늦은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클레이 키건은 어느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이 실린 신문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가 창고에 갇힌 누군가를 발견하는 장면이 떠올랐고, 그 장면은 오랫동안 제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이 기사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85년,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 뉴로스는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며 혹독한 겨울을 맞는다. 그 곳에서 주인공 빌 펄롱은 부유하진 않아도 먹고사는 데 부족함 없이 슬하에 다섯 딸을 두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꾸려가는 석탄 상인 가장이다. 뉴로스는 점점 쇠락해가며,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사는 게 힘들어진다. 펄롱은 빈곤하게 태어나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엄마의 주인집 어른인 윌슨 부인의 후원 아래, 편안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펄롱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창고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펄롱은 성실한 가장이다.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업이 있고, 딸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으며, 따뜻한 침대에 누워 하루 일을 마무리하는 안온한 삶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런 삶이 깨질까봐 조심스러워하며 산다. 그런 펄롱에게 수녀원 창고에서 발견한 소녀는 그의 삶에 파동을 일으킨다. 동네에서 절대적 권력을 가진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보고 눈감아야 하는가? 펄롱은 처음 소녀를 발견했을 때는 불의에 눈 감고, 불편해진다. 그는 가족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진 펄롱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일일까?’ 딸 다섯을 둔 펄롱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여학교에 딸 다섯을 보내야만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일일까?’ 펄롱은 쉽게 답을 얻지 못한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말하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떠올리게 된다. 펄롱은 아기를 낳아 젖이 번져 있는, 누렇고 해진 옷을 입고 지친 표정에 맨발로 서 있는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을 나온다. 그런 펄롱을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빛은 따뜻하지 않다. 어쩌면 어떤 사람은 바보 같고 어리석다고 조롱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펄롱은 이제야 마음이 편해진다. 자신을 윌슨 부인이 돕지 않았다면 고아인 자신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부당함과 부정함에 맞서고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뭔가 대단한 신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며 모른척하고 사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군가 질문한다면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펄롱이 질문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일일까?’에 대한 답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윌슨 부인의 사소한 친절은 펄롱을 사소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소해 보인다고 모른 척 하는 것들을 펄롱은 절대 지나치지 못했다. ‘펄롱’같은 누군가의 사소한 시작으로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게 된 것은 아닐까?
펄롱의 질문은 클레이 키건이 독자에게 묻는 질문이 된다. 이 질문은 김수영이 쓴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란 시에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란 질문을,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