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은 미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도심 속 감성공간이다. 높은 벽을 책으로 벽돌을 쌓아 올린 듯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도서관 특유의 분위기가 아니라 복잡하면서도 질서가 잡혀있다. 단순히 책만 읽는 곳이 아니다. 어른 아이 섞여 독서와 휴식을 즐기는 곳이다. 이 거대한 개방형 도서관은 요즘처럼 찌는듯한 여름철에는 반 피서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여기저기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특히 아이들은 바닥에 두 다리 쭉 뻗고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이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운 경험으로 기억 될 것 같다. 이 광경을 보니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暑八事)가 생각난다. 더위를 이기는 8가지 피서법을 시로 쓴 것이다.
깨끗한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솔밭에서 활쏘기, 넓은 누각에서 투호하기,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네 타기, 서쪽 연못에 핀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 밝은 밤 개울가에서 발 씻기다.
이 중에 비 오는 날 시 짓기는 습하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시를 지었다니 선비의 멋스러움이다. 빗소리가 시심을 불러 왔을지도 모른다. 서쪽 연못에 핀 연꽃 구경하기는 한가롭고 여유로움이 돋보이는 피서라 생각한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번잡한 것들을 잠시 내려놓는 데는 그만인 것 같다.
활쏘기나 투호하기 그네 타기는 몸을 쓰는 놀이를 통해 정신수양까지 생각한 게 아닌가 한다. 땀을 흠뻑 흘리고 더위로 지친 마음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는 자연과 함께한 피서다. 요즘으로 생각하면 숲속을 산책하며 삼림욕으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과 비슷하지 싶다. 현대인들은 매미 소리가 시끄러워 창문도 열지 못한다고 불평하는데 대조를 이룬다. 이런 면에서 다산의 피서는 자연을 벗 삼는 선비의 소소함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 소박한 피서에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요즘 우리들이 하는 피서는 다소 요란하고 소비적이다. 예전처럼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바다나 계곡으로 떠나던 시대는 지났다. 캠핑도 다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몸만 간다.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편안히 잠자며 주는 밥 먹고 호텔 안의 시설을 이용하는 피서가 유행이다. 호캉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일반화가 되었다. 이럴 만도 한 것이 폭염을 더 이상 여름이 아니라 재난으로 보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온열 환자가 속출하는 것을 보면 에어컨 없는 피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어르신들은 공짜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서 더위를 식힌다고 하니 그 분들만의 궁여지책이라 생각한다.
날로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때에 오히려 냉방을 조심해야 한다. 지나친 냉방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짜증이 생기기 쉬운 때이니 마음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 자기만의 피서법을 가지고 무더위에는 잠시 숨을 고르며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