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by 원은미

친구야, 언젠가 내게 물었지. 그 오랜 세월 시집살이를 어떻게 했냐고.

그러면서 너는 시집살이를 한마디로 말해보라고 했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인내’ 라고 했어.

인내 하나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만 그래도 인내가 중요한 것 같아. 특히 어른들은 순종을 좋아하지.

내 생각을 말하면 말대답 한다고 몹시 싫어하거든.

그러다보니 내 속에서 뭔가 꿈틀 거리는 것이 있어도 누를 수밖에.

친구야, 시집살이는 무언가에 묶여 있는 것 같을 때가 많아. 누가 매어 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렇게 느껴지는 것은 시집살이를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거야.

가끔 이런 사람이 있어. 복 받을거라고, 장수할거라고, 자식이 잘 될거라고,

수긍하기 참 어려운 말이야. 그냥 ‘애쓴다’ 한마디면 될 것을.


나는 파란 하늘을 좋아 하고, 핑크빛 코스모스를 좋아해. 그런데 내 색을 다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시집살이야. 아니면 부딪치게 되거든. 상황에 따라 적당히 빨간색도 됐다 노란색도 됐다 해야 돼.

그리고 종지 같은 사람, 대접 같은 사람, 곰솥 같은 사람으로 변모하는 기술도 필요해.

이런 것은 살다보면 저절로 익혀지는 기술이야. 그래야 두루두루 편안하게 살거든.

시집살이, 두 번 다시는 못 할 것 같아.

꼭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식성 생각 성향 등에 맞추며 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바깥 날씨에 맞춰 옷을 입듯이 시집살이 하는 사람은 시어른 얼굴 날씨를 살펴야해.

그래서 말소리 숨소리를 조정해야 하거든.


친구야, ‘시간밥’ 이라는 말은 들어 봤지? 이게 정말 사람 잡는 일이거든.

외출했다가도 저녁 시간이 되면 불이 나게 뛰어 들어와야 해.

어렵게 밥상을 차려놓아도 마음이 놓이지가 않아. 맛있다고 잘 드시면 다행인데,

입에 맞는 것이 없다고 하면 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아.

그래서 때로는 미움으로 밥을 짓고, 원망으로 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설거지도 미뤄두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이러다 꼬인 마음으로 잠들곤 하지.

짓지 않아도 될 죄를 짓는 것 같아 무지 속상해.


시어른이 90이 넘고 내가 60이 넘어서야 조금 편안해 졌어. 아마 서로 짠한 마음이 들어서인 것 같아.

측은지심 연민 애틋함 이런 거 말이야.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흰머리가 반은 차지하고서야 생기다니,

딸이라면 아무 문제 되지 않을 일이 며느리에게는 문제가 되고, 친정 엄마라면 웃어넘길 일도 시어머니에게는 섭섭한 마음이 드니, 고부간에는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아.

수 십 년을 동고동락 했는데도 이것밖에 안 되니, 사람이 좀 변변치 못하지.


친구야,

시집살이를 까마득하게 생각하다 세월만 보낸 것 같아.

나의 시간이 허락 된다면,

봄에는 봄처럼

여름에는 여름처럼

가을에는 가을처럼

겨울에는 겨울처럼 살고 싶어.

좀 더 기다리면 이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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