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결혼식, 그러니까 혼인 성사를 위해 성당에서 신부님과 면담을 했다. 나와 배송비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나는 오래된 냉담자이고 배송비는 비신자이다. 그래서 성당에서 식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기도 하고 전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신부님과의 면담은 천주교 식으로 결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이다. 지금은 물론 성당을 다니던 때에도 신부님을 일대일로 만난 적은 거의 없어서 긴장이 꽤 많이 됐다. 먼저 각자 들어가서 면담을 하고, 정해진 양식에 따라 질의응답과 서약을 하며 서류를 작성했다. 이어서 배송비와 함께 들어가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란히 앉은 우리에게 신부님은 서로에게 어떤 것을 해 주고 싶은지, 또 무엇을 바라는지를 물으셨다. 갑자기 질문을 받으니 구체적으로 답하기는 어려워서 그냥 적당히 두루뭉실한 대답을 했다. 사실 바라는 게 없지는 않을텐데, 우리는 살면서 사랑하는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라서는 안된다는 그런 관념을 강하게 주입받는 것 같다.
어제 함께 폭풍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혼자 사는 것보다 같이 사는 게 더 좋으면 되는거 아닐까 생각했다. 당연한 것 같지만 또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결혼하고 더 외롭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생활하면서 자주 부딪치고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우린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서로 좋아하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이 세상이 혼자보다는 둘 이상이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편리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어서이기도 하다. 비슷한 주거비로 좀 더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고 여러모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나도 배송비에게 그 정도 해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혼자 사는 것보다 좋은 정도. 굳이 비교 대상을 두는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막연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행복하게 해주고야 싶다. 그리고 서로의 행복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행복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항상 행복할 수도 없고, 전부 나에게 달린 것도 아니고. '항상 웃게' 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가 안 웃고 있으면 슬퍼지고 화를 내게 되기도 한다. 내가 널 이렇게 좋아하고 네게 잘해주는데 넌 왜 행복하지 않냐고 따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안된다.
배송비는 나의 감정과 기분, 행복에 적당한 수준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자기가 며칠동안 계속 집에 늦게 들어오는데 마침 내 기분이 안좋아 보인다, 그럼 다음날부터 빨리 퇴근을 하려고 노력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나는 종종 내 기분이 왜 나쁜지 모르기 때문에 배송비의 이러한 조치는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나도 여러가지 이유로, 때로는 별 이유도 없이 기분이 왔다갔다 하는 편이고 배송비도 그런 걸 아는 것 같다. 내가 기분이 처지거나 나쁘다고 같이 우울해한다거나 자기 탓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같이 지내는 것을 혼자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지내는 것과 비교해야 하는걸까? 농담인지 진심인지, '내가 너만 아니었어도'라거나, '내가 그때 다른 누구를 만났더라면' 같은 말들로 그런 비교를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나는 배송비가 아니었다면 왠지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그런 비교는 별로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그 반대의 생각은 어쩌면 할 수도 있겠다. 우리 관계에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배송비는 나보다 좀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 따위의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때 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야 있겠지만 그렇게 건강하지도 않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생각이란 걸 알고 있다. 그게 누구든 같이 살면서 마찰이나 다툼이 없을 수는 없을 거고 나는 남들보다 특별히 나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곤 한다. 서로 너무 익숙해지고, 당연해지고, 좋은 모습 뿐만 아니라 보기 싫은 모습도 많이 보게 되고 그런 것들 말이다. 오늘 읽은 멀리사 브로더의 '오늘 너무 슬픔'에서 그런 상태가 잘 묘사되어 있어 여기 옮겨 적어본다. '누군가와 장기적인 관계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곤 한다. 상대방이 하나의 독립체로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였던 사람이 언젠가부터는 내 소유물로 보인다. 혹은 그 사람이 사라질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함께 지내는 게 얼마나 좋은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가 혼자일 때 얼마나 불안하고 외롭고 찌질하며 별로인지 적어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 정말로 원고를 마감해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그런 글을 써서 책에 싣는 것은 포기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