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유병기 (有病記)
빈혈, 진단에서 수혈까지 (1)
아이는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평소에 기초체온이 조금 높은 편이라 혹시라도 코로나 의심을 받을까 전날 다니던 소아과에 가서 소견서도 받아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병원을 가기 전까지 내 신경은 온통 아이의 체온에 가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아이의 체온을 재고, 혹 병원에서 사진을 믿지 못할까 봐 동영상으로도 체온을 재는 영상을 찍어두었다. 다행히 정상 체온이었다.
수술을 위해 채혈을 하러 들어온 간호사들은 아이의 피부가 하얗다며,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보다며 아이의 피를 뽑았다. 남편은 원장의 수술 설명을 들으러 가 있었고, 나는 링거를 단 아이의 신경을 돌리려 TV를 보여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까 채혈했던 간호사보다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간호사였다.
“어머니, 아이 혈색소 수치가 너무 낮아요, 이 상태로는 수술 못해요.”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바로 전 날, 소아과까지 다녀왔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예방접종이나 영유아검진, 사소한 감기 등으로 다녔던 소아과에서는 빈혈이나 혈색소수치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오늘의 아이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어제 소아과도 다녀왔다고, 지금 밥을 안 먹어서 그렇지 평소와 상태가 똑같다는 나의 말에 그럼 간호사는 다시 한번 채혈을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채혈 후 우는 아이를 달래 가며 나는 이전 결과가 잘못 나왔던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병실에 온 간호사는 아까보다 수치가 조금 올랐지만 여전히 수술할 수 없다고 했다. 정상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치. 나는 납득하지 못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만큼 몸이 약하지 않았고, 어지럽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빈혈이면, 심각하다면 어지러웠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이는 삼시세끼 잘 먹고, 잘 잤다. 철분에 좋은 시금치와 쇠고기는 거의 매일 먹는 수준이었고, 잠은 70일 무렵부터 밤 9시에서 아침 7시까지 통으로 자는 아이였다. 하지만 간호사는 이 아이의 일상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 나는 조금 억울했다.
“어머니, 이 수치면 아이가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나는 아이의 이상 증상도, 힘든 것도 눈치채지 못한 엄마가 되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냐는 나의 질문에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라는 말을 들었다. 혹시 대학병원 소아과 연계가 가능하냐고 물었고, 간호사는 확인해 보겠다며 병실을 나섰다. 수술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실로 온 남편은 당황스러워하며 허탈하게 웃었고, 우리는 각자의 어머니들께 이 사실을 전했다. 아이의 주 양육자인 나의 어머니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내가 간호사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쏟아냈지만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눈물이 났지만 이내 멈췄다. 아이가 나를 봤을까. 눈물 흘리는 나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의 상황을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는 고작 네 살이었다.
대학병원에 전화해 보겠다던 간호사는 소아과는 예약이 다 차서 진료가 어렵지만 이 수치로 응급실 진료가 가능하다고 말했고, 우리는 퇴원 준비를 했다. 처음 채혈을 하러 들어왔던 젊은 간호사는 링거를 정리하면서 어쩐지 아이의 손바닥과 발바닥이 유난히 희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냐는 나의 질문에 간호사는 난처한 듯 자기가 2년 정도 근무했는데 처음 보았다고 말했다.
응급실에 가면 링거를 또 꽂을 게 뻔했다. 아이의 손등에 또 주삿바늘을 찌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주삿바늘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10시가 좀 넘었을 뿐인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하루였다. 유아 빈혈에 대해 검색하다 울기를 반복하다 눈을 붙였다. 아이는 오늘따라 힘이 없어 보였다. 오늘 하루는 내 생각보다 더 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