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유병기 (有病記)

빈혈, 진단에서 수혈까지 (2)

by 징느

코로나 시대에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체온검사였다. 우리도 체온검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섰다. 혹시라도 코로나 의심을 받아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어제 받아둔 소아과 소견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우리의 앞에는 한 노부부가 체온검사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수술 실밥의 소독을 하러 왔다고 했. 응급실은 급한 순서대로 진료하 때문에 소독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고, 진료비도 비싸게 나올 거라며 다른 곳에서 소독을 받아도 된다고 의료진이 말했다. 마스크와 페이스실드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말투 형식적이었지만 짜증과 피곤이 묻어났다. 할머니는 다른 데서 소독을 하자며 할아버지를 설득했지만 할아버지는 막무가내였고, 의료진과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참의 실랑이가 끝나, 우리 차례가 되었다. 의료진은 어떻게 왔는지 등의 간단한 질문을 하고, 체온을 쟀다. 아이는 정상 체온이 나왔다. 체온이라도 말썽을 부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외부 대기실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예진을 하러 줄을 섰다. 앞 순서의 할아버지의 차례가 되었는데 아까 그 할아버지가 보이질 않았다. 예진을 담당하는 의료진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계속 불렀고, 앞에서 기다리는 우리에게 할아버지를 먼저 예진해야 한다고 난처한 듯 말했다. 할아버지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잠시 후 우리는 예진 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 명의 의료진은 우리가 어떻게 왔는지를 들었다. 의료진들은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아이에게 일상적인 말을 걸면서 혈압을 쟀다. 아이는 낯선 기구가 자신의 팔을 주무르는 느낌이 싫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의료진은 아이를 달래주면서 예진을 완료했다. 혈압은 정상이었고, 우리는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응급실에 들어오자 의료진은 우리에게 응급실은 순서대로 진료를 보지 않으니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수차례 들었던 이야기였만 이렇게 반복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는 빈 대기의자에 앉았다. 내 앞에 한 가족이 앉아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여자 아이는 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할 만큼 아파 보였다. 그 아이에 비해 나의 아이는 너무나도 멀쩡히 앉아 있었다. 응급실에 들어가려면 한참 걸리겠구나 생각하던 찰나 아이의 이름이 불렸다. 이렇게 빨리 들어간다고? 의료진은 아이가 있을 침대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전 병원에서 받은 진료의뢰서와 검사기록지를 가지고 갔지만 피검사를 다시 해야 했다. 게다가 피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기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결과가 너무 안 좋으면 수혈을 받을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리 응급실을 나가고 싶었던 나는 수혈은 안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병원은 최악의 상황을 얘기니까 수혈은 안 하겠지, 통화로 상황을 전해 들은 어머니도 수혈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의 상황은 최악이 아니까. 어린이집이나 병원에서도 아이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링거를 꽂으려 할 때 이전 병원에서 꽂은 주삿바늘을 쓰면 안 되냐고 물었다. 의료진은 아이의 손등에 꽂혀 있는 주삿바늘을 살펴보더니 안될 것 같다며 다른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응급실에서 나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의료진은 우리에게 아이가 평소에 밥은 잘 먹었는지, 평소에 쓰러진 적은 없는지, 혈변을 본 적이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철분이 든 식사는 얼마나 하는지 물었다. 나는 이전 병원에서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밥은 세끼 꼬박 먹고 잠도 잘 잔다고, 시금치랑 소고기는 자주 먹고, 쓰러진 적도 없고, 혈변도 본 적이 없다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 의료진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우리만큼 의아했을까, 아마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점심때가 지나 남편은 병원 식당가에서 돈가스와 메밀국수를 먹고 오더니 맛있었다며 만족했다. 나는 입맛이 없어 남편이 사 온 음식을 간단히 먹었다. 아이는 낮잠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낯선 환경 때문인지 잠을 자지 못했다. 네 살 인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때 밥도 먹지 않고, 낮잠도 자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수술을 위해 챙겨 왔던 장난감으로 아이의 시간을 때웠다.


2시간 후 결과가 나왔고, 수혈 처방도 같이 나왔다. 혈액 두 팩을 4시간 동안 수혈받아야 하고, 추가로 피검사를 해야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수혈 처방은 나왔지만 수혈이 시작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를 잊어버린 건 아겠지만 시간이 무 지체되어 물어보니 혈액이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 사이 소아과 의료진이 와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전에 들었던 질문과 다르지 않았고, 나의 대답도 같았다. 대답을 들은 모든 의료진은 모두 의아해했고, 아무도 우리에게 원인, 혹은 원인으로 의심되는 사항을 알려주지 못했다.


남편은 잠시 집에 다녀오기로 했는데, 퇴근 시간과 겹쳐 한참을 도로에 갇혀 있었다. 나는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와 응급실에 갇혀 있었다. 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침대에 아이를 세워 놓고, 아이를 안아주면서 메트로놈처럼 양 옆으로 몸을 흔들거렸다. 누군가 응급실 커튼을 열고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꽤나 부끄러웠겠지만 다행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아이 함께 흔들거렸, 끊임없이 아이와 대화를 했다. 이곳은 누구나 올 수 있다고, 엄마도 와 봤고, 할머니도 갔었고, 그때 너는 엄마 뱃속에 있었다고(!)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아이에게 오늘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의 기억이 아이에게 트라우마로 자리잡지 않길 기도했다.


수혈은 별 일 없이 잘 끝났지만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잘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수혈 후 응급실에서는 피검사를 한 번 더 하길 권했고, 소아과에서는 아이를 한 번 보더니 외래가 잡혔으니 그때 피검사를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외래는 3일 후로 잡혀 있었다. 피검사를 한 번 더 하면 또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원래 9시면 자는 아이인데 지금 집에 가도 잘 시간을 넘길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소아과 의료진은 웃으면서 외래 때 수치를 보자고 말했다. 응급실에 온 지 9시간 만에 집에 갈 수 있었다. 끝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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