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유병기 (有病記)

4세, 내시경을 하다. (1)

by 징느

내시경이 결정되고 나서 나는 포털에서 어린이의 대장 내시경 경험담을 수없이 검색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4세 정도 되는 어린아이의 대장 내시경 경험담을 찾지 못했다. (물론, 내가 못 찾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경험담의 부재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대장 내시경은 나도, 남편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유일한 경험자인 나의 어머니는 아이가 그 약을 먹을 수 있냐며 걱정 헸다. “애들도 먹을 수 있대요”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걱정을 하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 더 큰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은 이유는 왜일까.


내시경 전 먹을 음식도 걱정이었다. 아이는 죽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카스텔라를 먹는 게 나을 거라며, 카스텔라를 사다 놓으라고 했다. 나는 병원에서 준 안내문을 꼼꼼히 읽었고,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철저하게 확인했다. 혹시 음식 때문에 내시경을 못하게 될까 걱정이었다. 오히려 어머니가 그 정도는 괜찮다고, 그렇게 안 먹으면 먹을 것이 없다며 나를 말렸다. 내시경은 금요일이었다. 전 날,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녀와서 내시경 약을 마셨다. 약을 마신 후 화장실은 한두 번 정도 갔다고 했다. 다행히 아이는 내시경 약에 거부감이 없었다. 퇴근을 하고, 타지에서 근무하는 남편도 집으로 왔다. 밤이 걱정됐지만 오후에도 화장실 한 두 번 가고 말았기에 밤에도 똑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연히 크나큰 오산이었다.


아이는 자러 들어갔지만 연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10시, 11시, 12시를 넘길 때까지 쉼 없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눈에는 잠이 쏟아졌지만 못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와 남편도 잘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움직여야 했기에 남편을 들여보내고 나 홀로 아이의 화장실행이 멈추길 기다렸다.


다음 날, 짧게 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도 먹지 않고 ‘피 뽑는 병원’에 도착한 아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내시경실 대기의자에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내시경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실에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의료진은 나와 아이를 보곤 생년월일을 물었다. 의료진은 당연히 내가 내시경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말하는 생년월일을 듣고는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아이가 받나요?" 의료진은 순간 당황한 모습이었다. 주의사항을 듣고 나와 다시 기실에 앉다.


다시 아이의 이름이 불렸다. 아이와 내가 내시경실로 들어갔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도 보호자와 같이 서 있었다. 성인이 아닌 내시경 대상자는 둘 뿐이었던 것 같았다. 의료진은 청소년에게 먼저 검사복을 주고, 우리에게도 검사복을 건넸다. 의료진은 아이를 보더니 조금은 난처한 얼굴로 제일 작은 사이즈로 가져왔지만 그래도 아이에게는 검사복이 클 거라고 했다. 뒤가 트여있는 바지를 보여주며 입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탈의실로 가서 아이에게 윗옷을 갈아입혔다. 바지를 입히려는 순간 아이는 바지를 입지 않겠다고 버텼다. 평소의 나였다면 “한 번만 입자, 괜찮아”라고 설득하거나 단호하게 “입어야 돼!” 말했을 텐데 그때만큼은 단호할 수 없었다. “입어야 돼, 선생님이 입고 나오라고 하셨어, 입어야 검사받아.” 아이를 설득했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더 큰 소리로 바지를 입지 않겠다고 버텼다.


“싫어! 안 입어! 안 입을 거야!"


아이는 울면서 큰 소리로 소리쳤다. 아마 나에게 옷을 건네주었던 의료진에게도 그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좁은 탈의실 한 칸에서 아이는 나를 요리조리 피했다. 아침을 먹지 못해 힘도 없었을 텐데 아이는 필사적이었다. 나는 억지로 바지를 입히려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나도 울고 싶었다. 눈물을 애써 삼켰다. “그래, 바지는 입지 말자.” 아이를 안으며 달랬다.


검사복 상의만 입고 탈의실을 나갔다. 의료진에게 아이가 바지를 너무 입기 싫어한다고, 여벌의 속옷과 바지를 챙겨 왔으니 이 상태로 검사를 해달라고 했다. 아이는 주삿바늘을 꽂았다. 기분이 잔뜩 나빠진 탓에 주사도 맞기 싫어했지만 의료진들이 아이가 용감하게 주사를 맞는다고 감탄해 주자 아이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아이는 링거를 꽂고 나왔다. 대기실로 나가는 순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저렇게 어린애가 내시경을 한다고? 다들 안쓰런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사람들은 아까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서 탈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대강 설명했다. 남편은 ‘아이고’ 하며 가볍게 웃었지만 아이를 안쓰러워했다. 그야말로 “웃픈” 상황이었다.


대기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도 아이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나는 의료진에게 다시 가서 아이의 검사가 왜 시작되지 않는지 물었고, 교수님의 오전 회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기약 없이 한참을 앉아 있은 후 아이의 이름이 불렸고, 아이와 나는 내시경실로 들어갔다. 의료진들이 아이의 내시경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조금은 추운 듯한 공기와 윙윙 돌아가는 기계 소리. 나는 아이가 춥지 않을까 걱정됐다. 수면제는 아이의 체중에 맞는 용량으로 투여하고 과다 투여는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만 몇 번째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검사를 잘 받으라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다시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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