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유병기 (有病記)
4세, 내시경을 하다. (2)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아이의 보호자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검사를 받던 곳이 아닌 다른 내시경실에 의료진이 서있었다. 아이의 내시경은 끝났고, 지금 자고 있다고 했다. 의료진은 아이의 내시경 결과를 말해주었다. 위내시경은 끝냈지만 대장내시경은 진행 중에 아이의 뒤척임이 심해져 중단됐다. 아이의 체중에 맞게 수면유도제를 처방했기에 더 이상 투여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체중이 좀 더 나갔더라면... 의료진은 아쉬운 듯 말했다. 위 내시경에서는 출혈이 발생하는 부위가 없었고, 대장내시경을 진행한 데에서는 출혈이 발생하는 부위를 찾지 못했다. 결국 초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셈이었다. 다시 또 내시경을 해야 되는 건가? 내시경 준비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물었다. 의료진은 체중이 늘면 수면유도제를 더 쓸 수 있으니 그때는 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다시 내시경을 진행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위내시경을 통해 호산구성 위장관염인지 확인을 위해 조직검사를 한다고 했고, 장상피화생의 소견을 들었다. 장상피화생도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내시경 전 외래 때 진행한 아이의 혈액검사에서 밀가루의 알레르기 반응이 확인되어 계란흰자와 밀가루, 글루텐의 식이제한이 추가로 결정되었다. 사실 우유에서도 반응이 있긴 했지만 유제품까지 제한하는 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할 거라고 의료진은 말했다. 나는 아이가 케이크를 좋아하는데 케이크를 못 먹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런 나에게 의료진은 염증수치 때문에 ASCA(염증성 장질환) 예방식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밀가루 식이제한이 없어도 케이크는 먹을 수 없다고 했다. ASCA(염증성 장질환) 예방 식단으로 전달받은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무분별한 항생제 복용 금지
2) 붉은 고기(가공육) 금지
3) 고기의 나쁜 기름, 비계 금지
4) 케이크, 마가린, 버터, 통조림, 냉동식품(레토르트) 금지
아이는 어차피 가공육이나 마가린, 버터, 통조림, 냉동식품을 거의 먹지 않았다. 문제는 자주 먹는 구운 고기, 어쩌다 먹는 케이크 그리고 항생제였다. 감기가 나으려면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고 믿는 주변인들 때문에 이 부분을 설득시키는 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힘든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아이의 철분 때문에 소고기를 구워대는 남편에게는 기름, 비계를 제거하고 먹이는 것으로 신신당부를 했다. 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굽는 행위가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매번 수육을 할 수 없어 이 부분은 스스로 타협을 해버렸다.
그 외 아이의 증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다시 대기의자로 돌아왔다. 아이는 잠이 들었고, 마취가 풀릴 즈음 다시 보호자를 부른다고 했다. 남편에게 들은 얘기를 짧게 설명하고 아이가 깨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아이의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이가 누워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는 잠이 덜 깬 상태로 누워서 나를 보았다. 무슨 생각으로 잠이 들고 깼을까.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이였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