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유병기 (有病記)
밀가루를 못 먹는다는 건
조부모가 양육하는 아이는 엄마가 양육하는 아이보다 과자, 사탕, 초콜릿 같은 군것질거리에 더 빨리 노출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행히도 나의 어머니는 소아 비만과 소아 당뇨를 매우 우려하는 분이셔서 과자나 초콜릿, 사탕, 젤리를 사주는 법이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지 않았던 아이는 원에서 나오는 오후 간식을 먹지 않아 또래보다 군것질거리에 늦게 노출된 편이었다. 가끔 어린이집에서 과자봉지를 받아오는 날에는 어머니가 아이 몰래 내 책상에 봉지를 올려놓았고, 나는 그 과자를 가지고 회사에 가서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밀가루를 제한한다는 이야기에 케이크만 고민했던 나는 식이제한이 시작되고 나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밀가루가 얼마나 많이 포함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케이크만 안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빈혈을 알고 난 후부터 가볍게 생각했던 상황이 예상보다 큰 무게로 다가온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밥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소고기 동그랑땡 반찬을 거의 매일 먹었던 아이는 밀가루 식이제한을 시작하면서 동그랑땡을 먹을 수 없었다. 대체할 수 있는 쌀가루가 있긴 했지만 밀가루와 점성이 달라 어머니의 마음에는 들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튀김이나 돈가스는 쌀가루로 대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린이집 식단에 밀가루가 나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대체식을 해서 보내곤 했다. 주말 점심에는 항상 남편이 해준 파스타를 먹었는데 처음에는 그것도 먹지 못했다가 글루텐프리 파스타면이 있다는 걸 알고 구해 먹었다. 파스타 소스에도 밀이 함유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이는 오일파스타를 먹기 시작했고, 메밀 소바에도 눈을 떴다. 간장에도 밀가루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집 근처에서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찰보리 호두과자를 판매하고 있어 종종 사 먹었는데 보리에도 글루텐이 포함되기 때문에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보리밥도 먹을 수 없었다.
아무리 군것질을 안 했던 아이라도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남편은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과자를 찾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동안 아이에게 과자나 초콜릿, 사탕들을 조금씩 먹이고 싶어 했는데, 밀가루 식이제한을 시작하고부터 밀가루만 들어있지 않으면 군것질거리를 사 왔다. 나와 어머니는 밀가루 식이제한이 아니어도 과자는 안 먹였을 거라며 제지했지만 남편은 멈추지 않았다. 일부 스타벅스에서도 밀가루가 들어있지 않은 카스텔라를 판매했다. 밀가루를 쓰지 않는 빵집도 찾아서 종종 다녀왔다. 아이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포기할 수 없었기에 아이스크림케이크나 쌀케이크를 사서 먹었다. 처음부터 아이에게 밀가루를 못 먹는다는 사실과 왜 밀가루를 못 먹는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밀가루를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오며 가며 들었던 것 같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언제부턴가 매일 아침 철분제를 섞은 주스를 먹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계란 흰자의 제한은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계란과 메추리알의 흰자만 안 먹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진료에서 교수님은 계란 흰자로 만든 가공식품도 먹이면 안 된다고 알려주셨다. 가공식품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한 나는 그저 놀란 얼굴로 교수님만 바라보았다. 사실 계란 흰자 제한과 계란 제한이 뭐가 다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행히 아이의 추가 검사 이후 밀가루 제한만 유지하고 계란 흰자는 조금씩 섭취해 보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