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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Jun 30. 2016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고

독서-에세이


 이 책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인지된 나의 결여가 그 상대방을 사랑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결여는 인간에게 근본적인 것이다. 바로 욕망 때문이다. 욕망은 밑 빠진 독이다.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언제나 결여는 인간에게 필연적이다. “인간에게 욕망이라는 것을 만들어 넣은 것은 인간이 계속 살아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지만, 신은 인간의 삶이 그 욕망과 더불어 장차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미리 계산하지 못했거나 안 한 것 같다.”(p.99). 욕망은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불행하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다. 결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하며(“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의 속뜻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결여다.’” p.25), 결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해진다(그래서 우리는 “사랑 기계다.”p.42). 그러나 욕망에서부터 파생되는 결여는 상투적인 언어와 망각의 세계로 뒤덮인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덮개기억”(p.146)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내가 무언가를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야만 행복해지는 것은 아닌가?
“너는 지금 행복한가? 행복하다면 그것은 어떤 것을 은폐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행복이 아닌가? 그래서 얻은 행복이라면 그것은 가짜가 아닌가? 진짜 행복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실과의 대면 이후에나 겨우 가능한 것이 아닌가?(P.147)”
그런데 “타인의 사랑이 내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결여를 인지하도록 이끄는 것,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타인의 사랑에 응답하게 만드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P.20”)면, 이것은 그리 로맨틱한 상황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사랑은 나의 결여를 인지하게까지 만드는 것. 나를 코너까지 몰고 완전히 뒤흔드는 것.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적인 것.
그래서 영화 그래비티에서 “라이언을 태운 소유즈가 우주선의 파편들과 함께 지구를 향해 착륙하는 장면이 무심코 봐도 지구라는 난소를 향해 정자가 돌진하는 장면처럼 보인(P.212)”다면, 사랑(혹은 성관계)는 우리의 개별적 우주가 흔들리는 전대미문의 사건인 것이다. 때론 사랑은 영화 <아무르>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죽일 만큼 사랑(P.57)”하는 원인이 되며, 영화 <해리포터>의 스네이프가 덤블도어(선)와 볼드모트(악) 사이를 넘나들면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즉 사랑은 선악의 경계에 빗금을 친다. 이때 욕망에서부터 발현된 충동은 “죽음충동”(P.211)으로 전화한다. 사랑은 윤리를 넘어 죽음까지 불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목숨을 건 “인정투쟁”(P.221)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자기의식의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면 자립성을 얻고, 목숨만은 부지하겠다고 하면 자립성을 잃는다. 전자가 주인이 되고, 후자가 노예로 전락한다.”(P.221) 사랑하는 관계의 두 사람은 그러므로 노예와 주인처럼 동등하지 않다. 사랑은 늘 “한 사람은 덜 사랑했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은 너무 사랑하”게(P.55) 만든다. 사랑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든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타이타닉은 “잭과 로즈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침몰해야만 했다”(P.157)) 영원한 낭만적 사랑은 불가능하다. 영화 <늑대소년>의 경우 “철수가 47년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순이가 47년 동안 철수를 버린 것이다”(P,159) 사랑해도 (영화 <아무르>), 사랑하지 않아도(영화 <케빈에 대하여>) 폭력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말은 유용하다.


  “폭력은 이미 여기에 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 폭력이라는 일반적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폭력이 언제나 있으며, 이를 내재한 그 자체의 방식으로 평화롭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인디고 연구소,궁리,2012, P.175) 어차피 모든 것이 폭력이라면, 우리는 폭력의 최소화를 위하여, 타인에 대해 “필사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해야만”(p.132) 할 것이다. 타인의 결점과 결여를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나의 결여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 그러므로 신형철의 사랑은 피학적이다. 그는 책 맨 앞장에 “나의 절대적인 사람 신샛별에게”라고 썼다. 여기에 마조히즘의 냄새가 희미하게나마 배어있음을 주목하라. 이것이 바로 “예수 이후의 윤리학이다”(p.77)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복음 5장 38~39절))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고정된 ‘자아’로부터 도주하려는 ‘주체’의 필사적인 운동이기도 하다. 예수는 죽어야했다. 왜? 그리스도교의 탄생을 위해서. 그는 부활해야했고, 따라서 그의 죽음은 필연적이었다. “지젝은 예수가 유다에게 전한 메시지를 이렇게 옮긴다. ‘내가 너의 전부임을 보여라. 그러려면 우리 둘 다를 위한 혁명과업을 위해 나를 배반하라.’”(p.231) 여기서 유다(Judas)가 예수(Jesus)의 거울상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예수는 거울상을 부수지만, 거울상이 없으면 예수도 없기에 그는 죽는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내가 거울 앞에 섰을 때 거울에 비치는 내 거울상이 없다면, 나는 이미 죽은 것이다. 유다라는 죽음을 품은 채로 예수는 부활한다. 결국 예수(유다)는 예수를 낳는다.(“나는 다시 나를 낳아야 한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커티스는 죽는다. “그는 아버지가 되기를 포기하고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미련 없이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p.172)영화 <시>에서 양미자는 자살한다. “양미자는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 쓰는 마음’이라고 배웠고 그것은 그녀에게 삶과 시를 일치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희진의 목소리로 발화하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삶에서도 희진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시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그 논리적 귀결은 무엇인가. 희진이 자살했으므로 그녀도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p.141) 죽음을 통해 커티스는 아버지 되기에 성공하고, 양미자는 시 쓰기에 성공한다. “성장은 살인이다... 우리는 인생의 몇몇 고비들을 특정한 어떤 사람을 상징적으로 살해하면서 통과한다.”(p.183) 왜 하필이면 살인과 죽음인가?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성장의 사건이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을 앗아가거나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p.150)가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사건 현장에서 인간은 상징적 살인과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체험을 어떤 식으로건 서사화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p.202)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비평가일지도 모른다.”(같은 페이지) 이 책에서 비평가 신형철은 작품을 해석하고 해체하는 동시에 다시 낳는다. 그는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나는 해석자다. 해석자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해석은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이다. 작품을 ‘까는’ 것이 아니라 ‘낳는’ 일이다. 해석은 인식의 산파술이다.” 이 산파술을 통해 우리는 작품을 돌아 볼 수 있었다. 그의 비평을 통해 영화가 비추는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섣부른 반성은 금물일 테다. “너에게 용서받기 위한 반성, 아니, 이미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해버린, 그런 반성 말이다.”(p.46) 그러나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고 믿고 싶다.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는 좋을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p.34)이니까. 우리의 지난 시간을 반추함으로써 우리는 과거를 서사화하고, 과거를 해석하고, 거기서 의미를 도출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희망은 있다. 우리의 지난한 과거에도 의미가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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