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

by 사람

독서모임용 책은 일인용 책과 다르다. 책을 처음 읽는 시기에 독서모임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독서가 모임에서 지속가능한지 의문이다. 물론 독서의 개념을 타인과의 대화로 확장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책과 사람의 관계처럼 내밀한 관계도 없지 않나.


책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대중성 혹은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모임을 주최하는 모임장 또는 주최자는, 자신의 취향과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모임이기 때문에 어쨌든 타인 그것도 다수의 타인이 참석해야 하며, 이러한 다중의 기호를 고려할 때 '나'의 기호 그 자체가 상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나의 관심사를 반성 또는 (모임 구성원들의 일반적 관점에)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 취향의 내밀한 깊이와 대중적 취향의 너비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본다면 취향 자체도 그 개인의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개인이 바라본 다중 또한 결국 추상에 불과하다(우리가 머릿속으로 구상한 전체 집단은 어쨌든 실재한다기보단 추상에 가깝다). 하지만 모임장은 어쨌든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구성된 가상이지만, 책 선별을 피할 수 없고, 그것이 바로 모임의 위력이자 모임장에게 부여된 강제성이다. 개인의 자유는 독서모임이라는 네트워크에 진입하는 순간, 곧장 다수에 대한 책임으로 전도된다.


모임장(주최자)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은 이 즈음이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난립한다. '나는 소설이 좋아요', '나는 과학책이 좋은데요', 등등....... 만일 주최자가 회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통합시키려고 한다면 책 선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임에서 취향은 개인적이기보다는 다수의 구성원의 평균치를 측정하는 척도로 변모한다.


만일 구성원들이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다면 구성원들의 의견을 일치시키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대화=대립 아닌가? 토론은 동일자들의 나르시시즘적인 독백이 아니라 개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경합하는 장소 아닌가?


따라서 모임장의 책 선별 기준은 구성원들의 지적•취향의 통합이 아니라, 그것의 분열을 극단으로 밀고 가는 것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는 회원들을 교란하고 (지적인 차원에서) 분열시키는 것이 모임장의 본모습인 것이다. 모임장의 실상은 사기꾼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일치성이야말로 그의 위력이다.


예컨대 농작물에 해당하는 보리가 물물교환에 쓰이는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보리 그 자체의 사용가치(음식으로서의 보리)가 상실되어야 한다. 보리가 화폐로 기능하는 마을에서는 보리가 밀이나 쌀이 속한 농작물이라는 범주로부터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보리는 농작물로 보이지만 화폐로서 이질적인 자기 자신을 시장 경제라는 네트워크적 차원에서 발견한다. 모임장은 일견 모임 구성원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로부터 배제된 일종의 구성적 예외이다.


한마디로 모임장은 구성적 예외로서 전체 집단을 매개하는 화폐처럼 기능한다. 보리가 없다면 다른 농작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폐로서의 보리가 없다면 그 마을의 시장경제는 정지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임장이 부재하는 순간 모임은 작동하기를 멈춘다. 나는 지금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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