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by 사람

저녁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런 시를 읽었다.


추리 소설

이장욱

겨울에 추리 소설을 썼는데 범인이 없었다. 의문도 없었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다 간
재만 남은
한 사람의 생각만 있었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아주 오래 하면
겨울이 온다.
겨울은 길어서
곰처럼 잠을 자야 한다.

내 소설의 주인공에게는 악몽이 있고
의심과 비상구와 외로운
밤하늘이 있는데
아무래도 사후가 부족하다.

피살자가 나타나서 같이 대화를 했다.
피살자는 이미 피살당한 뒤라서
주인공에게 관심이 없었다.
정치에도 드라마에도 프로야구에도 심지어
누가 범인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사후의 존재라서
겨울만 무한하다고 했다.
범인은 누구라도 좋다고 했다.
사랑이 없다고 했다.

나는 결백하였으나
시체를 방에 두고 외출한 사람처럼
쓸쓸해졌다.

내가 범인인가?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으나
그는 답이 없었다.
차가운 생각만이
나를 영영 가두고 있었다.

[출처] 추리 소설/이장욱 시인 |작성자 이만영
https://blog.naver.com/moonylee77/224159818157

이 시를 읽고 바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떠올렸다. "탐정은 범죄자를 뒤쫓는 사람입니다만, 죄에 대해서는 어떤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범죄의 형식에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범인을 붙잡은 일 자체는 중요하지 않죠. 그러니 오히려 범죄자가 우수할수록 좋습니다. 그런 뜻에서 탐정은 범죄자와 비슷한 존재이거나 실은 더 질이 나쁩니다." (<문학론집>, p.344)

여기서 탐정은 비평가이다. 비평가는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의 형식을 드러낸다. 따라서 범죄자(작가)의 문학적 형식(범죄의 형식)이 우수할수록 좋다. 왜냐하면 분석하기 어려울수록 그것을 분석하는 비평가로서의 자신의 입지가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이를 추리 소설에 비유하자면, 트릭의 난이도가 높을수록 그것이 해결되었을 때 독자의 쾌감은 상승한다).

추리 소설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장르라는 점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을 품고 있다. 즉 탐정이 범인이라는 미지수 x를 적발하는 순간 세계의 불가해성이 일거에 해소되는 구조를 지녔다.

이제 탐정이 되어서 시를 읽어보자. 시적 화자는 추리 소설가로 보이는데 특이하게도 주인공(탐정)이 아닌 피살자와 대화를 나눈다. 살아있는 탐정과는 달리 피살자는 ‘사후’의 존재이다. 따라서 이것은 합리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불가해한 세계관을 전제한다. 즉 ‘추리 소설’이라는 시의 제목 자체가 역설적인 기능을 한다. 타자(불가해성)를 침투시킴으로써 추리 소설이라는 기존의 장르를 해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추리 소설은 미지수 x에 해당하는 범인을 적발하기만 하면 해소되는 구조를 지녔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범인이 없’고 따라서 ‘의문도 없’다. 결국 세계의 불가해함은 피살자의 사후로 전이된다. 시적 화자는 추리 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내부에 있지만 동시에 그것의 바깥에서 장르 그 자체를 의심한다. 따라서 이 시를 읽고 나서 나는 조심스럽게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범인(작가)인가 아니면 탐정(비평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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