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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Jan 17. 2017

<너의 이름은>을 보고

영화/애니메이션


타키와 미츠하가 재회하는 마지막 씬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끔찍한 상황입니다. 타키에게 미츠하는 과거에 그가 벌였던 영웅적 행위에 대한 보상물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이런 서사 구조는 가깝게는 닌텐도의 슈퍼마리오에서도 볼 수 있지만 고대부터 자주 등장했던 남근신화적 영웅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에서 여성은 사물(남성에 대한 보상물)로 전락합니다. 미츠하에게 선택지는 별 볼일 없는 취준생의 연인으로 편입되는 것 말고는 없어 보입니다.

타키와 미츠하의 사이에는 3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타키와 미츠하가 몸을 바꾸는 시점에서 미츠하는 유성 충돌로 죽어 있었습니다. 이는 미츠하가 마지막 씬에서가 아니라, 이미 처음부터 사물화된, 즉 '죽어있는 시체'라는 것을 정확히 지시합니다. 그러므로 여성은 이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겠습니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세카이계*의 공식에 따라 추상화되기도 했지만, 아마 이런 부분에 연유한다면, 처음부터 두 남녀의 로맨스에 대한 개연성이 부재했던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사랑은 도착증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3.11(후쿠시마 원전사고)이후 일본인들의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이 영화를 통해 치유하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흥행을 위해 제작사가 전달한 홍보 문구를그대로 읊었다고 해도, 의식이 있는 예술가(감독)라면 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3.11은 세월호 참사처럼 재해나 사고가 아닙니다. 3.11의 중핵은 원전마피아이며, 관료제적 레벨에서 이루어진 정경유착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합니다.


유성우는 재해입니다. 쓰나미나 지진도 재해입니다. 그러나 3.11은 재해가 아닙니다. 이미 모든 스위치는 국가시스템적 차원에서 마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자연이 스위치를 눌렀다고 한들, 그 '스위치'에 주안점을 둬야 합니다. 즉, 자연에 모든 원인을 돌려서는 안됩니다. 신카이 마코토는 바로 이 길을 택했고, 3.11은 사건이 아닌 사고(자연 재해)로 영화에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애도가 아니라 은폐이고, 기억이 아니라 기만입니다. 영화 속 유성우는 이러한 중핵을 가리는 장치입니다. 아름다운 영상 속에서 현실이 미학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무츠비'라는 제기를 통해 시간을 초월하여 마을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이 장면의 핵심은 '시간을 초월한다(=자연적인 것을 초월한다)'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미츠하가 아버지(=마을 시장)를 설득하는 장면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정치적인 것이 가족관계로 환원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적인 것이 사적화되고 있습니다. 즉 3.11의 원인이었던 일본 관료제의 부패(원전마피아)를 영화가 무의식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적 장소가 사적인 이해관계로 오염되는 순간> 마츠하는 마을사람들을 구조하게 되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정경유착과 부패로 이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츠비는 과연 무엇일까요? 물론 그것은 주술적인 도구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주술을 사용했던 이유가 자연에 저항하고 그것을 길들이고자 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복구하거나 길들일 수 없는 단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준 것이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일본의 3.11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어제 박진주님의 탈핵 강의를 듣다가, 제가 사는 지역이 원자력발전소의 피폭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로컬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중국에 산재하는 핵발전소 역시 물의 흐름이나 대륙풍의 방향으로 볼 때 우리 주변에 산재하는 위험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핵문제는 이미 범국가적인 차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물질들은 대류를 순환하여 우리 앞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3.11에 대한 애도행위는 일본인들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후손들을 넘어, 전 세계인들을 애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릅니다.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 이것이 무츠비(매듭)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일지도 모릅니다.



*세카이계: 주인공(나)과 히로인(너)을 중심으로 한 작은 관계성(너와 나)의 문제가, 구체적인 중간 부분을 두지 않고, '세계의 위기', '이 세계의 마지막'과 같은 추상적이면서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는 스토리를 묘사하는 작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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