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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Nov 21. 2016

겨울-나무

매일의 유서


 낙엽. 불어오는 바람.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몸을 휘감아 골목을 돌아서 사라지는


 그곳에는 세계의 끝도 있고, 부서진 말들의 잔해도 있고, 유통기한이 지난 기억들도 있다. 먼저 가 있던 사람이 뒤늦게 도착하는 사람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흉기를 건넨다. 잊는다는 것은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것.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등뒤의 배경을 끊임없이 소거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사랑했던 시간이, 두 사람의 주검 위로 유유히 흘러갈 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저녁. 살인자는 칼을 떨어뜨리고, 주저 앉은 뒤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다. 제 얼굴을

묻다.


 나는 폐허에 도착했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들을 통해서 가까스로 체화된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이해도 아니다. 그저 다른 각도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시선을 승인하려는 태도.


잊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필요해서, 살인자에게는 그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구나. 동선을 계획하고 알리바이를 만들지 않아도 사건은 끝내

발생하는 것.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칼날로서.

마치, 시나리오처럼.


 그곳에서 태어나는 2인칭의 시선. 침묵을 연습하는 두 개의 문장. 밤의 캄캄한 글씨체로서, 이곳에 도착할 것을 미리 예견했다고 믿어야만 했던 어느 눈 먼 예언자처럼.

얼음, 그리고

정지.


떨어지는 낙엽이 겨눴던 곳.  

날아가는 새들이 흩어지는 방향.

눈 덮인 숲.

마침내


생각을 그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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