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장

찬란했던 기록을 다시 꺼내봅니다.

by 미나무

엄마를 만난 지 27년째.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게 흘러버린 시간에, 나는 엄마가 가장 예뻤을 27살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마주한 엄마의 모습은 어릴 때의 잔상과는 달랐지만 여전히 예뻤다. 문득 ‘엄마도 나와 같을 때가 있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초등학생 때를 생각해보니 엄마는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학교 전산실에서 동생과 나란히 앉아 타자를 쳤고, 붓글씨를 배우기 위해 서예학원을 다녔고, 집에서는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했다. 집안이 어려웠을 때에는 밤늦게까지 인형 눈알을 붙였고 팔찌를 만들었고 쑥뜸기를 조립했다. 저녁에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가계부를 적었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도 썼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심지가 곧았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던 그런 큰일이 생겨도 괜찮다며 뿌리 깊은 나무처럼 꼿꼿이 버티고 앉아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참 오랫동안 엄마는 배우는 것과 기록하는 것을 멈추었다가 60세가 된 지금 다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조금씩 시동을 거는 중이다. 엄마의 휴대폰 메모장을 들춰보면 ‘해보고 싶은 것’이 수두룩하다. 지금까지 다 하고 싶어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많다.

엄마의 버킷리스트


엄마가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아서일까. 웹 개발을 배우는 지금도 초등학교 전산실에 앉아 타자연습을 하던 그 모습이 계속 생각나서 노트북을 선물했다. 그리고 엄마의 일대기가 담긴 1988년 산 일기장을 노트북으로 옮기는 일을 제안하였고, 울 엄마는 흔쾌히 열심히 메모장에 일기를 옮겨적고 있다.

열심히 일기장을 카피하는 울 엄마
영어 자판기에 임시방편으로 적은 한글


과연 내 나이 때의 울 엄마는 어떤 글에 감동받았으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아버린, 다시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나의 어릴 적 엄마의 모습.


사실 ‘엄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한데, 그녀의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지만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어떻게 하면 울 엄마의 인생이 풍요로워질지 고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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