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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미성 Jun 06. 2016

할아버지의 파란 상자

인생에 아로새겨지는 어떤 부재에 대하여 

남편의 할아버지, 나의 시할아버지께서 얼마 전 돌아가셨다. 98 세의 연세였다. 

 급작스런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신 것이 2주 전, 자식들이 모인 것을 보시고는 이제 됐다는 듯 지체 없이 떠나가셨다. 폐 끼치기 싫어하고 독립적인, 짱짱하고 깔끔한 평소의 성격답다고 가족들은 이야기했다.


내가 시할아버지를 처음 뵌 것은 약 10여 년 전이었다. 그 분을 뵙기 전 식구들에게서 정 없고 냉정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지구 반대편의 다른 세계가 궁금해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는 형형한 눈빛의 80세 중반 노인이 내 눈엔 참 멋져보였다. 요양원에 들어가신 게 불과 2년 전, 아흔이 넘은 연세까지 묵묵히 혼자 사시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별다른 도움 요청 한번 없으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할아버지는 놀라울 정도로 맑은 정신을 유지하셨다. 자주 뵙지는 못하면서도 할아버지의 건재한 정신을 잘 알 수 있었던 건 그분이 종종 보내오시는 친필 편지 덕분이었다. 2014년 크리스마스에는 1922 년 어느 여름의 사진을 복사한 종이에, "3살 반이었던 조셰프가 그동안 약간의 돈을 모아왔고, 이제 95세가 되었다. 너희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 기쁘다"는 내용의 편지를 직접 써서 용돈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또 한번은 프랑스에 진출하는 한국기업들에 대한 신문기사를 스크랩해서  "네 생각을 했다"며 짧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시기도 했다. 

1922 년 브르타뉴의 한 섬. 아이였던 할아버지의 모습. 



회계사였던 시할아버지는 유산 상속에 있어서도 그 어떤 새로운 해석이나 오해가 없도록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을 남기셨다. 예를 들면, 자신이 평생 집필한 출판물과 직접 쓴 글들은 둘째 손자 니콜라에게 남기겠다며 이런 말을 붙이셨다. 이 저작물을 복사하거나 빌려갈 때 그 비용을 반드시 니콜라에게 지불해야 한다고. 그가 가장 소중히 보관해 온 노트와 글들을 왜 가장 아꼈던 큰 손자가 아닌 둘째 손자에게 남기는지, 분명 큰 손자가 서운해할 것을 아셨을 것이면서도 이에 대한 설명은 붙이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복사비에 대한 설명은 붙여놓고 가신 것이다.    


시할아버지는 이렇게 죽음 이후까지도 철두철미한 공정성을 유지하셨다. 가족들은 이런 냉정함이 가끔은 서운하기도 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에 돌아가신 시할머니에 대해서는 다들 여전히 나누고 싶은 추억이 많다. 남편도 할머니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었다. 천사같이 맑은 분이셨다고. 

하지만 늘 함께 있어도 "다른 곳"에 계신 것 같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속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시할머니에게는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정신적 이상증세가 있었다. 이는 첫째 딸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네 살이 된 딸을 병으로 떠나보낸 후, 수십 년의 세월을 할머니는 내내 그 고통 속에서 살아내느라 한 번도 명료한 적이 없으셨다고, 남편은 기억한다.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셨으나,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한 번도 표현하지 않으셨던 분이라고. 할아버지와는 매우 달랐던 분으로,  내내 할아버지가 지극히 보살폈던 분으로 가족들은 이야기한다.    


그토록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셨던 시할아버지가 사망 전 아주 이상한 유언을 남기셨다. 사시던 집의 옷장 안 깊숙한 곳에 파란색 상자가 있다고, 그 상자와 함께 묻어달라는 말이었다. 시아버지와 시고모님, 두 남매는 그렇게 아버지의 집에서 옷장을 뒤져 의문의 파란색 상자를 찾아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할 말을 잃고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그 상자의 뚜껑에는 "Catherine" 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이는 아주 오래전 시조부모님이 잃어버린 딸의 이름이자 이 두 남매가 잃어버린 여자 형제의 이름이다. 상자 안에는 금발의 머리카락 한 묶음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딸을 잃고, 또 그렇게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아내를 일찍 보내고서도 할아버지는 그동안 이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으셨다고 한다. 워낙 이성적인 분이니 세월과 함께 나름대로 마음의 정리도 잘 하셨겠지, 혹은 잊지는 못해도 다시 이야기를 꺼내고 싶진 않으신가 보다 다들 짐작만 하고 있었다. 




아내를 잃은 아픔을 처절하게 토로하며 줄리언 반스*는 이렇게 썼었다. 


젊은 시절, 세상은 노골적 이게도 섹스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나중에는 사랑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 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로 세상은 슬픔을 견뎌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런 분류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로지르는 회귀선이다.


경험하기 전에는 가늠하기도 힘든 엄청난 상실의 감정이 있을 것이다. 남편의 조부모는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한 사람의 부재를 끌어안고 살았다. 육십 여년 동안 한 사람의 마음에서 깊숙하게, 조용히 소용돌이 치고 있었을 그 상실감을, 그 세월 동안 참고 삼켜냈을 그 그리움의 크기를 나는 그저 막연하게 짐작해 볼 뿐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중.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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