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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미성 Sep 09. 2016

가난한 연인의 우아한 식탁

돈이 없으면 먹고 싶은 게 더 많이 생각나고, 더 자주 배가 고프다. 가난을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아는 서러운 법칙이다. 가끔 거실 책장의 요리책 칸에서 마주치면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한 동료들처럼 괜히 고맙고 애틋한 마음이 드는 책들이 있다. 

« 싼값으로 누리는 즐거움 : 하루에 9유로 이하로 즐기는 맛있는 가족 식사 »,« 10 유로면 충분한 셰프의 40가지 메뉴 »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두 요리책의 저자 장 피에르 코프 (Jean-Pierre Coffe)와 이브 캉드보르드 (Yves Camdeborde) 는 프랑스 최고의 인기 셰프들이다. 유럽 재정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2010년 즈음, 이른바 불경기를 견뎌내는 필살기 요리법 책들이 속속들이 출간되었고, 실제로 우리 부부는 이 덕분으로 그 지독한 위기 속에서도 괜찮은 순간들을 만들 수 있었다.


남편보다 몇 해를 더 살아온 내게는 특히 여러 가지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난 시기였다. 이십 대 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학생에서 생활인으로 넘어가야 했던 시점이었다. 연애에서 넘어와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시점이기도 했고, 그렇게 이제는 온전히 어른이 되어야 했던 시점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인생이 펼쳐지겠지, 스무 살 무렵부터 당연하게 생각하다가 서른이 된 내게는, 오손 웰스와 고다르, 거스 반 산트와 미카엘 하네케의 세계가 세상의 전부였던 젊은 영화 전공자 부부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동안 살아온 세계를 환상이었다고 여기고 허물어 버릴 것인지,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불확실한 길을 걸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 무엇보다 그 선택이 가능한 마지막 시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아직 독립하지 못한 학생들이었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결혼과 함께 적어도 한 명은 본격적인 돈벌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먼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것인지의 답은 적어도 내게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내내 같은 학교 학생이었던 남편은 늘 최고의 점수를 받는 주목받는 학생이었고, 그가 공부를 계속할 것임은 모두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나의 재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정말 공부에 재능이 있는 자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더 빨리 깨달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진짜 공부는 이론서를 읽고서 그것을 이해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었다. 거기에서 자기 논리를 만들고 관점을 다시 세울 줄 알아야 하는 건데, 나는 책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늘 벅찼었다. 무엇보다 더 나 아가면 공부를 더 이상 즐기지 못할 것 같았다. 남편은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맞았고, 그렇다면 문을 열고 나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내 역할이었다.  


사실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 대해 오래전부터 묘한 동경을 품고 있기도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관념과 논리를 가지고 연구하고 토론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일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면, 단단히 현실에 발붙이고 살고 있는 직장인들의 삶이 좋아 보였다. 구체적인 실재의 힘,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에 대한 동경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또 다른 관념과 이상이었을 뿐, 그것이 얼마나 막연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밥벌이를 위해 발 디딘 사회는 그야말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냉혹한 곳이었다. 학생 시절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꼈던 고단함은 낭만적인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꺼내어 맞바꾸어줄 만한 현실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영화 전공자에게는 더욱 그랬다. 내게는 신성함 그 자체인 거스 반 산트의 영화 앞에서 코를 골아 나를 뜨악하게 만들던 회사원 친구도, 주말과 명절에는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리모콘 조정만 하고 있던 삼촌들도, 신파적인 음악과 함께 묘사되던 드라마 속 가장들의 무거운 어깨도, 심지어 거리에나앉아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정까지도 어느 날 갑자기 다 달라 보였다.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이젠 그냥 다 이해할 수 있을것 같은 기분, 이상한 연대감까지 생겨났다.  말 그대로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고, 또 순식간에 세상의 많은 것이 이해되는 기분도 들었다. 인간이 만들고 발전시킨 이 사회의 법칙이란 그리 복잡하게 보여도 사실, 먹고사는 일, 밥벌이의 숙명 속에서 너무나 단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 장님이 눈을 뜨면 그런 기분일까? 서른 살의 엄청난 깨달음이었다. 세상은 2차 대전 이후 탄생한 미학적 모더니즘을 몰라도, 기호학과 현상학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간단하고 또 명확한 세상의 이치, 남들은 스무 살에도 깨닫는 그 단순한 진실을 왜 나는 이제야 깨달은 걸까, 창피하기도 했고 후회도 됐다.   


돌아보면 그 시기에 나를 지탱했던 힘은 글쓰기와 영화 그리고 남편과의 식사시간이었다. 그 시절 우리, 가난했던 연인은 나름의 재미와 낭만을 식탁 위에서 찾아내고 있었다. 남편이 요리를 워낙 즐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하루의 일을 다 털어버리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 «공동의 시간» 으로 우리의 하루는 온통 집중되었다. 가난한 가정의 식탁이 그럼에도 풍성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 불경기 요리법 »을 소개하고 나섰던 두 명의 셰프 덕분이었다. 책 속에 소개된 요리들은 대부분 프랑스 전통요리들로, 본래 대로라면 다양하고 값비싼 재료들과 섬세한 요리법이 요구되는 음식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요리법을 대체 가능한 저렴한 재료들과 단순화된 과정으로 바꾸어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 주에 몇 번씩 10유로를 넘지 않는다는 나름의 도전과제를 놓고, 책 속의 다양한 요리들에 도전하고 평가했다. 


그때 자주 해 먹었던 요리 중 하나가 « 소고기 당근찜 boeuf carottes »이었다. 소고기 중에서 비교적 저렴한 대접살, 목살 등의 부위를 겉만 살짝 구운 후 양념한 당근과 마늘, 양파 등의 다른 야채들과 육수와 함께 오븐에 넣고 2시간여 동안 쪄서 먹는 방식이다.

이런 요리를 전통적으로 하자면 전날 밤부터 각종 야채를 넣고 소고기 육수를 만들어야 했겠고, 고기를 와인과 야채에 재워 하룻밤은 두어야 했겠지만, 이 책에서는 소스의 주재료가 되는 육수를 시판되는 육수 큐브를 사용하게 했다. 무엇보다 이 레시피의 특징은 1kg이나 넣도록 한 당근에 있었다. 

우선은 당근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적인 달콤함이 고기에 스며들고 육수에 스며들도록 해서 감칠맛을 내는 효과가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야채를 함께 요리하면 따로 사이드 메뉴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과 돈의 비용절감 효과까지 생겨나는 것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유럽의 재정위기는 위태롭게 지속되고 있고, 우리들의 경제위기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내내 우리의 삶과 함께 할지도 모른다. 다만, 유로화의 환율이 평소의 2배까지 치솟던 위기가 서서히 완화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가장 지독했던 고비도 서서히 넘어갔다. 그 얼마 후 방송사에서 국제 뉴스를 제작하는 흥미로운 일에 함께 하게 되면서 나의 노동환경도 개선되었다. 감정노동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밤에 누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어졌다. 그래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 켠이 어두워진다. 거리로 뛰쳐나가  다들 어떻게 지내고 계시냐고, 수치로만 계산되는 그 냉혹한 짐을 등에 지고 다들 어떻게 살아오셨냐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고 싶었던, 그 참담했던 마음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그 시절의 우리 두 사람을 생각하며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요령 없고 서툰, 우둔한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답이 나올 리 없는 문제를 고민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그럼에도 밥은 맛있게 먹어야 한다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시간. 심각한 표정으로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주려고 요리책을 뒤적이고,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가격을 비교하고, 와인을 한 병 살까 과일을 살까 티격태격하며 고민하던 시간. 그 가난했지만 다정했던 시간. 비록 수북한 당근에 값싼 소고기 한 덩어리의 투박한 맛이었지만, 그래도 그 소박한 재료가 주는 자연적인 달콤함과 내내 향긋하게 퍼져 나오는 당근의 상큼함에서 거친 하루의 위로를 느끼고 희망을 떠올렸던 그 시간들은 다시 오지 않을 풋풋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무리 냉혹하고 난폭한 세상이 저 밖에 펼쳐지고 있다 해도, 사려 깊고 따뜻한 식탁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 그 식탁의 온기로 하루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 누구보다 우아한 발걸음으로 우리는 또 하루를 함께 나아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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