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토리송에 대한 단상
프랑스의 남서쪽, 포도밭이 우거진 시골마을 메독(medoc)에는 미미 토리송 (Mimi Thorisson) 이라는 여성이 산다. 높은 천장, 벽난로, 나무계단 그리고 시간의 흔적이 멋스럽게 베인 커다랗고 투박한 나무 가구들이 있는 집이다. 넓고 잘 갖추어진 부엌의 창 너머로 몇 마리의 개들과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고, 그 뒤로는 숲이 이어진다. 휴일이면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세 명의 아이들이 따뜻한 햇볕 아래 금발 머리를 빛내며 과일을 따거나 텃밭을 살피고, 엄마는 아이들이 따온 보라색 무화과들을 잘라 커다란 나무 도마 위에 보기 좋게 늘어놓고 무화과 타르트를 만든다. 나무 식탁 위에는 셀러리와 당근 무더기, 보랏빛 마늘 더미와 초록색 케일과 같은 싱싱한 채소들이 사시사철 놓여있고, 정원에서 갓 잘라온 노란색 장미 한 다발과 아티초크 한 바구니가 놓일 때도 있다. 놋쇠 냄비와 은 식기, 세월에 이가 나간 리모주 접시와 커다란 촛대까지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 시골에 대한 판타지를 이보다 더 잘 구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미 토리송이 운영하는 블로그 이야기다. “먹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manger 가 그 제목으로, 토리송 가족의 시골 미식 생활이 주된 이야기로 채워진 블로그이다. 몇 해 전, 프랑스 요리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처음엔 잡지 화보를 모아놓은 사이트인 줄 알았다. 블로그 속 사진의 색감과 질감, 구도가 전문가의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그 장면들이 누군가에게 매일 벌어지는 일상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은 미미 토리송의 남편은 직업이 포토그래퍼라고 하니 사진의 완성도는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일상인 삶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아이 넷, 게다가 한 명은 갓난아기를 키우는 상황에서 피곤한 기색이라고는 없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청초하고 우아하기만 한, 그 빛나는 외모를 보고 나니 더더욱 그랬다. 진정 혼자서 이 재료들을 손질하고 모든 음식들을 다 만들고, 저 너른 마당에 널려있는 빨래들도 다 하고 있다는 말인가? 보모도 없이 저 네 명의 아이를 혼자 돌보면서? (심지어 최근에 태어난 갓난아이는 오전 내내 빨래를 하고,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준 후 남편과 함께 집에서 낳았다고 한다!)
아이도 없고, 살림도 잘 안 하면서도 늘 피곤함을 호소하며 추리닝 바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스스로를 한심하게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미미 토리송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중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미 토리송은 국적은 프랑스인이지만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다방면으로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홍콩에서 나고 자랐고, 금융을 공부했고, 한때 패션계에 종사했으며, CNN 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이슬란드 출신인 현재의 남편을 만나 파리에 살게 됐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큰 집을 찾다가 메독에 정착하게 됐다. 그렇게 그녀는 그 코즈모폴리턴 하고 블링 블링 한 커리어를 뒤로하고,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하며, 요리에만 전념하는 가정주부의 삶을 살게 됐다. 굳이 말 안 해도 그래 보이지만, 그녀는 그런 삶이 매우 행복하다고 자주 말하고 있었다.
사실, 음식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면, 미미 토리송은 모든 면에서 나와는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다.
화려한 외모와 커리어는 물론이고 시골생활, 가족관계 같은 생활환경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치를 두고 추구하는 삶의 모양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자주 “여성으로 사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결정적으로 이질감을 느꼈다. 그녀가 생각하는 여성으로서의 이상적인 삶이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녀와 같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커리어를 다 뒤로하고 온종일 청소, 빨래, 육아, 요리를 하면서 살게 됐다면, 아마도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 많이 회의할 것이다.
그럼에도, 레시피 이외에는 피부에 닿는 아무런 유용한 정보도 없는 그녀의 일상 이야기를 나는 왜 그렇게 자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아예 그 블로그를 즐겨찾기에 등록하면서 까지 말이다. 어쩌면 부러움이 아닐까?
나는 무엇이 부러운 걸까?
나 또한 미미 토리송처럼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성만이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요리를 하고 육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만약 나에게 딸이 있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최대한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라고 말해줄 것 같은데... 미미 토리송이나 우리나라의 유명 스타 블로거처럼 세 아이의 엄마로 요리하고 살림만 하면서 살아 볼래 한다면, 그 커다란 집을 같이 내준대도 글쎄... 하면서 아주 많이 망설일 것 같으니 말이다. 물론, 사랑스러운 아이들, 넓은 주방, 건강한 식재료, 동서양 모든 요리를 아우르는 엄청난 요리 솜씨, 빵 하나, 음료수 하나도 헉 소리가 나도록 예쁘게 연출할 줄 아는 센스 등 부러울 요소를 꼽자면 손가락이 모자라겠지만, 한정적인 시간과 에너지 속에서 여기엔 선택의 문제도 있음을 나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됐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자이자 작가인 모나 숄레(Mona Chollet)가 미미 토레송에 대해 쓴 글*을 발견했다.
나의 길티 플레져였던 이 블로그를 페미니스트인 모나 숄레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그녀 또한 이런 이상한 부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미 토리송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10분도 안 돼 우울해진다. 다만 나는 (사회와 개인의) 이상에 부응하는 그녀의 순응성이 부럽다.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표준에 자연스럽게 몸을 맞추는 일, 이미 수 백만의 여성들과 무엇보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수 백만의 모델들이 표지판을 잘 세워놓은 지대에 들어가는 일 (...) 은 따뜻한 반신욕처럼 기분 좋고, 편안할 것” 이라며 그 부러움의 실체를 정의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이 부정한 그 모델들에 어떤 향수도 느끼지 않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며 안락한 거실이나, 잘 꾸며진 크리스마스 장식을 동경하는 마음을 고백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부러움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블로그 속 여성들의 삶을 구경하며 가장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안락함, 그 마음의 여유로움이었던 것 같다. 그녀들에게서는 그 어떤 두려움, 의심도 없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편안함, 확신 같은 것이 느껴졌고, 나는 그 앞에서 매번 묘한 자괴감을 느꼈다. 특히 블로그 속 그녀의 뒤로 펼쳐진 푸른 숲과 식탁 위의 자연, 햇빛 아래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의식적으로 매연 가득한 도시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의 일상을 더더욱 인위적이고 초라한 것으로, “물결을 거스르는 일”로 느껴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모나 숄레는 그러면서 여성이 어떤 삶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나는 아이를 낳을지를 망설이고, 오랫동안 “남자들의 영역”으로 분류되어 왔던 사회생활에 많은 의미를 두며, 집안일에 재능이 없는 나의 현재에 여성성이 결여되어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 내 부러움의 실체를 깨닫고 난 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왜 여전히 여성의 이런 “다른 선택”은 고생스럽게 여겨져야 하는가였다.
미미 토리송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남성과 여성은 모든 면에서 완벽히 동등하다고 늘 느껴왔어요. 여성들은 이 동등함을 인정받기 위해 싸워야 했고, 싸워야 하죠. 하지만 그것이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살거나 남성들의 영역에서 똑같이 싸워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성은 여성의 역할을 하고, 그에 맞는 방식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를 인용하며 모나 숄레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2014년에도 우리는 여전히, 여성이 가정생활에 전념하지 않는 것을 공격적인 태도(남성과 싸워야 하는 것)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그녀는 “2014년에도 우리는 그렇게 여겼다” 가 아닌 “여길 수 있었다” 고 썼다!!)
사족: 사실 나는 미미 토리송이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처럼 모든 집안일을 혼자 다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이 블로그도 처음부터 일종의 비즈니스로 여기고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진행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최근 그녀는 책도 출판하고, 한 케이블 채널의 요리프로그램까지 진행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실제 사정이야 어떻든 모든 추측은 뒤로하고, 이 글에서는 그녀가 구축하려했던 이미지, 보여주는 일상의 모습 만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었음을 밝힌다.
출처:
* Chez soi: Une odyssée de l'espace domestique/ Mona Chollet/ La decouverte/ 2015
모든 사진: 미미 토리송 블로그. http://mimithorisson.com/
All the photos are taken by Oddur Thorisson.